고등학생은 공부를, 대학생이 되면 취업 준비를, 취업하면 결혼 준비를 하도록 종종 강요받는다. 왜 우리는 모두 정해진 길을 가야 할까.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당당히 맞서는 사람이 있다.
“어른이 되려고 애쓰지 말자. 최대한 느리게, 그리고 나답게 나이 들자.”
17세 딸을 둔 엄마이지만, 여전히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꾸려나가는 이수진 작가다. SNS 상에서 수십만 명 팔로워와 활발히 소통하며 올해가 가기 전에 구독자를 500만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피력하는 그녀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Q ‘느리게 어른이 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스스로 세운 어른의 기준이 있다면.
인생은 직선으로 올라가서 높은 성공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저기 둘러보고, 주위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결국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거니까. 제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란 꽃향기에 취해 누워 있기도 하고, 하늘을 바라볼 수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며 쉬었다 가는 삶이에요. 성공만을 바라보며 달렸지만 막상 높은 꼭대기에 올랐을 때 주위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경우도 있거든요. 주변에 같이 기뻐할 사람조차 남아 있지 않다면 그건 행복한 삶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국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만의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는 게 아닐까요.
Q ‘나답게’ 살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면 좋을까요.
행복의 반대말이 뭘까요. 저는 비교라고 생각해요. 요즘 청소년들은 우리보다 더 아는 게 많고 똑똑해요. 우리 때는 스마트폰은커녕 컴퓨터도 쓸 줄 몰랐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똑똑한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SNS에 올라오는 여행지에서의 화려한 모습, 가장 행복한 순간의 모습을 보면서 비교하고 슬퍼하는 경우를 봐요.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자존감이 낮아질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내가 이루어온 성공들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작은 거라도 내가 목표했던 것들을 이룬 경험은 누구나 있잖아요. 또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온 것, 사랑하는 부모님과 동생, 친구가 내 곁에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먼저 가져보면 좋겠어요.
Q 나다움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있다면.
첫 번째는 사랑과 감사예요. 그걸 잃게 되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더 많은 걸 가지려고 아등바등하게 되거든요. 곧 스스로 불행해지는 길이기도 하고요. 현재 누리고 있고, 내가 이룬 작은 성공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기특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두 번째는 ‘내가 이런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물음표를 남기는 게 아니라 ‘이룰 수 있다!’고 느낌표를 찍는 거예요. 또 ‘나는 어른이고, 이 정도면 됐어’라고 마침표를 찍기보다는 계속해서 새로운 느낌표를 찍어나가는 삶을 살고 싶어요.
세 번째는 실천하는 거예요. 아무리 마음속으로 사랑과 감사를 생각하고, 꿈이 있어도 실천을 하지 않으면 허언증이 돼버리거든요. 실천을 위해서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행동하라’는 말을 떠올려보세요. 저는 제가 원하는 게 있으면 정말 단순하게 ‘내가 이걸 원해? 그럼 뭘 할까?’ 생각하고 달려가거든요. 자기계발서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준비, 조준, 발사’가 아니고 ‘준비, 발사, 조준’이에요. 일단 한 걸음을 떼고 계획을 수정해 나가는 거죠. 모든 책도 첫 한 줄을 떼면서 시작이 되잖아요. 요즘은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1부터 100까지 완벽한 계획을 세워놓고 시작하면 이미 늦더라고요.
Q ‘나’와 ‘엄마’로서의 삶 가운데 어떻게 균형을 맞춰나가고 있나요.
제 나이 또래의 학부모들과 얘기를 해보면 자기 자신은 없고, 엄마로서의 삶이 90%인 사람들이 많아요. 아침 일찍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들 짐을 엄마가 이고 지고, 주말도 없이 끌고 다니는 경우를 많이 봐요. 그러다 애가 삐뚤어지면 충격을 받고, 인생이 흔들리기도 하죠.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다른 엄마들이랑 비교하면 불안하대요. 저는 부모가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우리 엄마가 저렇게 열심히 일하고, 꿈을 꾸고 이뤄가면서 행복해하는구나. 나도 어른이 되면 행복하고 좋겠다’ 이런 마음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딸이 유치원 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엄마, 오늘 하루만 치과 가지 말고 나랑 놀아주면 안 돼?”였어요. 그런데 그걸 단 한 번도 들어주지 못했어요. 항상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는데, 아이가 크고 나서 저를 오히려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더라고요. “엄마가 내 엄마로서 자랑스럽고, 나에게는 자부심이고 힘이 된다”고요. 내 커리어를 지켜가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Q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부모로서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딸이 중3 때 학교를 자퇴한다고 했을 때 저는 말 없이 꽉 껴안아 줬어요. 10년 후, 20년 후에도 어떻게 제 말이 옳다고 장담하겠어요.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해주는 거죠. 엄마는 공부로 성공했지만, 그게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넌 다른 방식으로 분명히 성공할 거라고 말해줬어요. 물론 그 뒤에는 맘껏 놀다가 이제야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죠(웃음). 하루는 침대에 누워서 “엄마, 나는 꿈이 없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만히 누워서 멋진 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건 정말 웃기는 일이야”라고 얘기했죠. 내가 흥미로운 걸 이것저것 하다 보면 유독 나는 재밌어서 했는데, 사람들이 박수치는 일이 있거든요. 우리 딸은 메이크업이 그래요. 메이크업 아카데미만 갔다 오면 기가 살아있어요. 학교에서 못 듣던 칭찬을 다 듣고 오니까요. 그 아이는 그게 너무 재밌으니까 밤새워서라도 메이크업 유튜브를 볼 수 있는 거예요.
개구리가 뒤로 한발 물러났다가 멀리 뛰겠다는데, 당장 뛰라고 밀어버리면 뛰지도 못하고 모래에 콕 박히잖아요. 제가 아이를 기다려주니까 1년 후에 스스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엄마, 나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반복하는 삶이 싫어. 조금 더 발전해볼래.”
Q 나답게 나이 드는 기술을 알게 된 지금,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큰 변화의 계기 중 하나는 ‘동상이몽’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거였어요. 제가 싱글맘이라는 사실을 노출하면 사람들이 날 손가락질할 것 같아서 밝히기 싫은 마음도 있었는데, 있는 그대로 생활을 보여주게 됐죠. 그런데 의외로 제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박수쳐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겉보기에는 안전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행한 가정도 많더라고요. 여자로서 굳이 결혼하지 않더라도 당당하게 살고 싶어 하는 커리어우먼들이 응원해주기도 하고요. 그걸 보고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면서 스스로가 당당하다면 숨기지 않아도 괜찮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뭔가 숨기고 세상에 나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순간 고립되고 슬퍼지거든요. 특히 저는 SNS를 하면서 젊은 사람들한테 소통하는 법을 많이 배워서 환자 볼 때도 말을 주고받는 게 원활해졌어요. 마음이 편해지면서 진심을 털어놓는 것에 점점 익숙해졌고, 이렇게 책까지 쓰게 됐죠.
Q 자아 정체감을 확립해야 할 중요한 시기의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많은 미래학자가 2040년이 되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이 쓸모없게 될 거라고 해요. 엄마가 “이거 해서 이 대학에 가라”고 해서 휩쓸리면서 압박을 느끼지 말고, 할 수 없다면 먼저 당당하게 얘기해보세요. 내 가족을 먼저 설득할 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설득의 기술은 사실 사회생활에서도 필요하거든요. 부모와 대화를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 인터뷰도 꼭 읽지 않아도 돼요(웃음). 한 마디로 어른들 말에 현혹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