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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책이 알려준 나, 책이 보여준 세상, 책으로 만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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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소개
윤지 작가
《나는 하버드에서도 책을 읽습니다》의 저자, 윤 지 작가

세상에는 가만히 어둠을 등지고 앉아 내면에 작은 불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 몇몇은 그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제 이야기를 한 줄씩 써내려간다. 
무엇이 될지 모르고, 무엇이 되리라 기대하지 않은 채로. 
그저 자신에게라도 거짓 없이 털어놓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든 시간을 묵묵히 보낼 뿐이다. 
여기, 그 고요한 밤을 지나 조금은 후련한 표정으로 세상과 마주 서 있는 샛별 같은 작가가 한 명 있다. 
이제 그녀의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 있다. 
하얗고 단단한 책에는 지난날 작가로 하여금 스스로와 이야기 나누게 하고, 
그리하여 글을 쓰게 하고, 나아가 세상에 귀 기울이도록 만든 ‘책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하버드에서도 책을 읽습니다》의 저자, 윤 지 작가를 만나 그녀가 넘겨온 페이지를 한 장씩 펼쳐 보았다.
Written by 윤혜은  Photo by 김인철 


윤 지 작가는 책 제목에 자신이 재학 중인 학교의 이름을 넣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출판사의 설득으로 완성된 제목은 과연 호기심을 자아내는 문구였지만, ‘하버드’보다는 ‘책’에 주목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윤 지 작가의 깊은 진심이다. 처음엔 기자도 윤 지 작가의 매력적인 프로필에 자연히 눈이 갔다. 민사고와 듀크대를 졸업하여,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을 앞둔 근사한 청춘. 그러나 인터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내가 매료된 것은 앞서 언급한 이력과는 무관한, 그 이면에 자리한 작가의 다양한 표정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서문에 밝힌 작가의 염려 같은 당부는 분명 기우로 그치게 되리라. 이 책을 펼친 독자라면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로 말미암아 지난날 미처 돌보지 못한 자신과 마주할 용기가 생길 테니까.


읽는 삶에 깃든 쓰는 자의 감각

정현종 시인은 시 <방문객>에서 한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지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 시의 구절이 생각났더랬다. 책에는 그녀가 학창시절을 거쳐 이십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읽은 책, 그 책과 함께 했던 순간들이 고백처럼 담겨 있는데, 내게는 ‘윤 지’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 더해 그녀가 책을 통해 만난 여러 ‘일생’들도 함께 다가오는 것 같았다. 어느덧 독서 인생 12년차. 익숙한 읽는 자아에서 새로이 쓰는 자아로서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읽히도록 다듬는 것이 쉽지 많은 않았을 터. 첫 책과 만난 소회를 물었다.

“그야말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책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는데요, 특히나 가족들은 모르는 저의 내밀한 이야기도 담겨 있기 때문에 조마조마했어요. 부모님에게는 그저 서평을 모은 책이라고만 말씀을 드렸거든요. 부모님이라면 제가 스스로의 상처를 바깥으로 드러냈을 때, 이해하지 못한 이들로부터 또 다시 아픔을 겪게 될까봐 걱정하셨을 테니까요. 의도치 않게 어떤 부분을 숨기고 책을 쓴 셈인데, 실제로 엄마가 조금 놀라셨나 봐요. 왜 책에다 거짓말을 했느냐고 제게 물어보실 정도였죠. 엄마 입장에서는 딸이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셈인데, 속상한 마음에 차라리 거짓말이길 바라셨던 거예요. 저는 씩씩하게 이겨나가고 있는 부분에 대해 말씀드렸고요. 그 과정에서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도 말이죠. 오히려 이 책 덕분에 그동안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어요.”

SNS에서 그녀를 먼저 만난 사람들이라면 작가라는 호칭보다 ‘프로 책추천러’라고 그녀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본격적으로 서평을 쓰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인데, 세어보니 2018년에만 150권의 책을 읽었다고. 그녀는 로스쿨 2학기와 로펌 인턴, 그리고 치열했던 취업준비를 병행하며 책을 읽은 스스로에게 놀라면서도, 결국 그 시간을 잘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은 책이었다고 말했다.

“SNS에 서평을 올리기 시작한지는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는데요, 예전에는 그저 남들처럼 개인의 일상을 담는 공간이었죠. 꾸준히 서평을 남기다 보니 제 글을 읽고 자기만의 책을 찾는 분들이 많아서 요즘은 저나 친구들과 함께 한 사진 같은 건 왠지 올리기 주저하게 돼요(웃음). 정말 ‘북스타그램’으로만 남아야 할 것 같은 저만의 강박이 조금 생겼다고 할까요. 사실 저도 책을 읽고 싶지 않은 하루가 있고, 책을 읽어도 서평을 쓰고 싶지 않은 책도 있을 거잖아요. 그런데 매일매일 뭔가를 읽고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자꾸만 생겨서 경계하고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읽기를 끝까지 순수한 마음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서평 쓰기를 일로 대하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요즘은 독서와 계정 운영 모두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윤 지 작가는 서평으로 책을 추천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지인들에게도 책 선물을 즐겨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사람들에게 책을 권하는 일이 꼭 상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기부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온라인에서 저에게 책 추천을 부탁하는 분들에겐 보통 요즘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무엇인지, 여태까지 읽었던 책 중 가장 좋았던 도서 한두 권 정도를 되물어 보곤 해요. 답변을 토대로 기존의 독서 경험과 유사한 결을 지니면서도 현재의 마음 상태를 돌봐줄 수 있는 책을 추천 드리고 있어요. 반면 지인들에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거나 책 추천을 요청하기도 전에 제가 먼저 선물하는 편이에요. 특히 친구들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고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어떤 책을 보면 친구가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하죠. 그래서인지 최근 2년 동안은 제가 누굴 만날 때마다 책을 선물하고 있더라고요. 친구들이 “나 아직 저번에 받은 책도 다 안 읽었으니까 그만 줘!”라고 말할 정도죠(웃음).”


책보다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이제는 온·오프라인의 경계 없이 책 추천을 일상화하는 그녀지만, 그동안 가까운 주변에 독서 경험을 깊게 공유할 만한 이는 없었단다. 유일하게 남자친구와 서로 책을 주고받으며 지냈다고. 윤 지 작가는 어쩌면 남자친구야말로 이 책을 읽고도 놀라지 않을 만큼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라고 고백했다. 출간 후 여름 한 달 동안 한국에 짧게 머무르고 있는 지금. 그녀의 열렬한 독자이자 늘 곁에서 응원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실제로 책에는 남자친구를 향한 그녀의 마음이 담긴 창작시가 실려 있는데, 누구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공감할 만한 메시지와 감수성에 적잖이 놀랐다. 

“감정이 격해질 때는 긴 글보다 시를 쓰는 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내 안에 가득한 감정을 당장 줄줄이 풀어내기보다, 단어를 고르고 의미를 함축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면 뜨거웠던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더라고요. 그래서 진심을 전할 때 직접 쓴 시를 건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시는 <미성숙한 진심>이라는 제목인데, 둘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았을 때 쓴 시예요. 이 시를 계기로 관계가 빨리 회복될 수 있었죠. 그러면서도 아직 시를 완전히 이해할 만큼 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집을 자주 찾아 읽진 않았는데요, 언젠가 제 마음에 다가오는 시를 만나기를 기다리면서 요즘은 시집 코너도 눈여겨보고 있어요.”

그녀의 말마따나 세상에 쓰인 시를 모두 이해하기엔 너무 젊은 건지 몰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는 데에 그녀의 나이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다. 윤 지 작가는 가능한 한 제 책을 읽고 감상을 남긴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성실히 남기고 있는데, 그것이 고민 상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제 책을 읽고 어떤 과거나 현재를 위로받은 독자들 중에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작가님에게 이렇게 제 고민을 남겨봅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내온 분들이 있어요. 저는 심리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그분들의 토로가 제게 와 닿은 이상 그 마음을 감싸주고 싶어서 메시지로 소통하다 오프라인 대화로까지 이어진 적도 있어요. 메시지만 주고받을 때에는 제 진심이나 온기가 잘 전해질 수 있도록 음성 메시지를 활용하면서 충분히 공감해드리려 노력하고 있어요.”

책을 스무 권씩 쌓아 놓고 읽으며 외로움과 심심함을 달래던 어린 날의 그녀와 꼭 같은 나이인,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부터 40대 주부까지. 윤 지 작가에게 멀리서부터 말을 걸어오는 이들의 연령대에는 대중이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만큼 사람을 참 좋아하는 작가에게는 과연 자꾸만 더 알고 싶고, 또 자신을 보여주고 싶게 하는 힘이 있는 듯했다.

“저는 독서를 제외하면, 평소에도 누군가와 만나 상담해주는 걸 좋아했어요.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던 분들과 한국에 머무는 동안 실제로 마주 앉아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들어드릴 수 있어 뿌듯했죠. 그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제 안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고민을 치유할 기회를 얻기도 했고요. 사실 지금은 저도 새 학기를 앞두고 좀 쉬어줘야 하는 타이밍인데, 이 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어요. 남은 시간 동안 저 자신을 챙기면서도 타인에게 보다 가까이 다다갈 수 있는 지점을 잘 조율해보려고요.”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자가  더 많은 책을 읽는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어떤 책을 읽고 저자나 내용에 실망하게 될 까봐 새 책을 고르는 데 망설이고 타인의 추천에 의지하곤 한다. 비슷한 이유로 유독 좋아하는 장르에 편중된 독서를 하는 기자와 달리 윤 지 작가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진정한 다독가로서 서재를 채우고 있었다.

“실제로 저에게 어떻게 하면 매번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는지 묻는 분들이 있어요. 제가 서평을 올리는 책들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까요(웃음). 그런데 저는 목적을 갖고 책을 읽는 편은 아니에요. 제가 지금 하는 고민이나 듣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책을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대신 주변에는 없는 다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내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입장이나 시선을 이해하고 느껴보고 싶어서 저는 책을 읽어요. 이런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으면 저와 생각이 맞지 않아도 배우는 점이 하나쯤은 생기기 마련이라 모든 독서가 유익하고 재미있게 끝나는 것 같아요.”

세상을 다각도로 이해하고 싶다면, 그만큼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윤 지 작가. 지금 그녀가 가장 관계 맺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가장 울렁이게 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며칠 전 영화 <기생충>을 보았는데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까지 저는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거나 심리적인 상처를 가진 분들을 치유하는 제 모습을 꿈꿨는데, 경제적으로 아주 열악한 환경에 놓인 분들, 실제로 집이 무너져가는 이들에게 과연 내가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자문하게 됐죠. 기부와 봉사를 넘어서 실질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내는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또 하나는, 저도 모르게 준 고통에 대한 발견과 공감이에요. 우리는 주로 자신이 피해자였을 때의 순간을 더 잘 기억하잖아요. ‘내가 당했다, 저 사람이 나를 괴롭혔다’와 같이. 그런데 살다 보면 저도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을 거란 말이죠. 제가 지나가듯 뱉은 말을 평생 아프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나쁜 의도로 살아가지 않아도 나는 이미 가해가자 되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상상을 해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저에게 상처를 받은 피해자가 저를 찾아와 지난 행동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다면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단순한 사과로 그쳐도 되는 건지 점검하는 거죠. 반대로 제가 누군가에게 사과를 요구한다면 저는 무엇을 원할 것인지 역으로 고민해보기도 하고요.”

윤 지 작가의 말을 듣자 ‘나이 들수록 준 고통은 희미해지고 받은 고통은 선명해진다’라고, 오래 전 은사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시간이 흘러 윤 지 작가를 통해 그 성숙하고 진지한 고민을 듣고 있자니 이내 내 마음에도 작은 돌멩이 하나가 얹어진 듯했다. 다가오는 계절에는 준 고통을 곱씹어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누군가의 마음에 아주 가라앉아 있을지도 모르는 내 얼굴에 대해서 말이다. 

“만약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무작정 ‘나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라고 말하지 말고 먼저 사과를 한 뒤 ‘내가 무엇을 더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 꼭 물어보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아요. ‘이 상처에 한해서, 내가 해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꼭 말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로 인해 너와 같은 상처를 받지 않도록 내가 더 노력하고 조심할게’라고 말하는 거죠.”

필사하듯 그 말을 머릿속으로 외고 있는데 윤 지 작가는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를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그 말에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번에는 나도 모르는 상처를 윤 지 작가를 통해 위로받은 기분이었다. 이어서 그녀가 조심스럽게 밝힌, 독서 테라피 컨셉의 두 번째 책이 벌써 기다려졌다. 

“지금도 제게 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분들과 소통하면서 먼 미래에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익명으로 담아 책으로 엮고 싶어요. 당시 제가 전해드린 답변과 또 함께 선물했던 책 소개도 더해서요. 우리 모두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거든요. 더 많은 분들이 책을 통해 간접 상담을 경험하고 마음을 위로받았으면 해요. 그날이 오기까지 우선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죠(웃음).”

마지막까지 윤 지 작가는 책이야말로 사랑을 말하기에, 오해를 풀기에 큰 도움을 주는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차마 상대를 바라보고 마음을 전하기 어려울 때, 혹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일 때, 책을 통한 간접적인 대화를 시도하기를 추천했다. 그녀의 조언처럼 내 마음을 닮은 책 한권을 읽고 책장 틈에 편지인 듯 감상평인 듯 메모를 접어 넣어 당신에게 건네 볼까. 윤 지 작가의 응원에 힘입어 예쁜 마음이 새싹처럼 고개를 내밀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디에서든 책을 읽고, 따뜻하고 섬세하게 마음을 나눌 그녀를 배웅하고 돌아가는 길. 새 책 한권을 샀다. 묵직해진 손이 가볍게 흔들거렸다. 


- 출처: 교육매거진 <앤써> http://www.answerz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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