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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상의 모든 아들, 딸들이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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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소개
윤태진 교수
서울대학교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필요한 말이 있다. 

인터넷에서 거듭 회자되는 인생 명언,  오랜 경력의 방송인이나 

유명 종교인이 전해주는 가슴 따뜻하고도 속 시원한 에피소드, 

베스트셀러가 뽑아내는 ‘책 속 의 한 줄’이 그렇다. 

우리는 통찰력 있는 한 마디에 공감하고 위로받는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좋은 말들을 나를  가장 잘 아는, 

내가 언제라도 기댈 수 있는 존재로부터 들을 수 있다면. 

그리하여 특별한 경험과 멋진 한 마디로 모두에게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만을 위한 깊은 조언으로 남는다면. 

답답하고 힘이 들 때마다 쉬이 마음을 내보여도 괜찮은, 

말하자면 ‘부모’가 내게 그런 존재가 되어준다면, 하고 말이다.

Written by 윤혜은  Photo by 김소연


윤태진 서울대학교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기자가 꿈꾸던 부모의 모습과 퍽 닮아 있었다. 어린 아들을 생각하며 쓴 편지 같은 이야기가 300편 가까이 실려 있는 책, 《아들아,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이 글을 읽어라》를 읽는 동안 스무 살도 넘게 차이나는 그의 어린 아들이 조금 부러웠더랬다. 한편으론 이렇게라도 한 아버지의 절절한 진심을 엿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내 아버지가 내게 미처 보여주지 못했고, 나 또한 귀 기울이지 못했던 그의 이야기가 어쩌면 이 한 권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대하듯 책을 읽고 마침내 윤태진 교수와 마주 앉았을 땐, 마음이 한결 편해져 있었다.


아버지와 나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세상이지만, 서로가 멀게 느껴질 때 부모자식만큼 서러운 관계도 세상에 없다. 부모는 내가 태어나 처음 만난 어른이고, 부모에게 자식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그 성장을  바라봐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느 날 윤태진 교수가 만 네 살의 아들에게 들었던 한 마디는 실로 그의 가슴을 따끔거리게 만들기 충분했으리라.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빠는 오늘 너에게 글을 남기기로 했어. 오늘 아침, 너는 아빠에게 말했지. “아빠, 나랑 놀자. 한국 돌아가면 못 놀잖아. 그러니까 지금 나랑 놀자.” 그래. 네 말은 제법 설득력 있었어.’

윤 교수는 아들의 체념 섞인 투정을 듣자마자 아들과 마주 앉아 블록으로 로봇을 만들었다. 그리고 고백한다.

‘솔직히 말하면, 네 말은 굉장히 설득력 있었어. 네 말을 들었을 때, 아빠 머릿속에는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네 할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아빠 모습이 퍼뜩 스쳐 지나갔거든.’

그리고 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할아버지의 무덤에 찾아가 바보처럼 울기만 한 아빠의 모습은 따라 하지 말라고. 너는 어리석었던 아빠와 다르게 언젠가 내가 네 옆에 없을 수 있음을 알아챈 똑똑한 아들이니까. 그러니,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이 글을 읽으라고.

인터뷰에 앞서 서문을 곱씹으려니 다시금 뭉클해졌다. 너그럽게 미소 짓는 윤 교수에게 처음 아들에게 글을 쓰기로 다짐했던, 동시에 처음으로 아이와 평범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미국 연수 시절에 대한 회상을 부탁했다.

“2017년에서 2018년까지 1년 동안 영상의학과 전공 연수차 미국 병원에서 지내게 되었어요. 그때 만 네 살이었던 아들도 함께 갔는데요, 우리나라에서 근무하는 것보다는 시간적으로 다소 여유로웠기 때문에 자연스레 아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죠.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아침에 아이를 차에 태우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풍경이에요. 운이 좋으면 오후에 집에 함께 들어가기도 하고요. 한국에서는 출근 전에도, 출근 후에도 아이가 잠들어 있는 모습만 보는 일상이 거의 대부분이었거든요. 때문에 미국에서도 잠깐이지만 아침마다 아이와 차에서 나누는 짧은 대화가 참 소중했어요. 사실 연수라는 게 저에게도 일종의 휴식 같은 기회였는데,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이가 제게 건넨 한 마디가 저로 하여금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일러주는 나침반이 됐죠.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 미국에서 보내는 것처럼 한국에서 저와 지낼 수는 없다는 것을요.”

윤 교수 또한 다가올 한국에서의 생활을 상상하면 아쉬움이 컸던 터라, 그 길로 틈틈이 훗날 아들의 빈 시간을 채워줄 만한 글을 쓰게 되었다고.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보편적인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투고를 결심했단다. 문득 윤 교수와 아버지의 오랜 추억은 어떠한지 궁금해졌다. 만약 그의 아버지도 이처럼 편지 한 장을 쓸 수 있었다면 어떤 글자들이 남았을까, 하고. 상상의 몫을 윤 교수에게 넘겼다.

“저희 아버지는 굉장히 과묵하고 바쁜 분이셨어요. 자녀들이 많기도 했지만, 하나하나 붙잡고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실 시간도 부족하셨을 거예요. 저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아들이었고…. 그러다보니 대화가 줄어들 수밖에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사실은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허심탄회화게 대화할 수도 있었던 시간의 부재가 무척 아쉽고 그리웠죠. 그래서 아빠가 된 지금에는 가능한 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또 아들을 사랑하는 제 마음을 잘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만약 아버지가 저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정직’과 ‘성실’ 딱 두 단어만 쓰시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남겨 놓으셨을 것 같아요(웃음). 드물게나마 한 번 말씀을 하시면 언제나 이와 관련된 조언을 하셨거든요. 제 책도 줄이고 줄이다 보면 결국 아버지와 같은 단어만 남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어쩌면 아들이라는 한 명의 독자만을 위해 쓴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 책. 자신을 향한 아빠의 사랑을 밀도 높게 느낄 수 있을 터. 아들의 반응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에게 짐짓 당당한 말투로 물어봤죠. “아들, 아빠가 아들에게 책도 써주고 하니까 너무 좋지?” 하고 말예요. 저는 당연히 “우리 아빠 최고!”라면서 좋아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아들이 “아니, 하나도 안 좋거든? 아빠가 책에만 신경 쓰고 나랑 안 놀아 주잖아”라고 답하더라고요. 서문에 나온 이야기처럼 처음에 아들이 자기랑 놀아달라고, 한국 돌아가면 못 노니까 지금 놀아달라고 하는 말이 계기가 되어 책을 쓰게 된 건데, 결국은 책 때문에 아들하고 또 못 놀아 준 거잖아요(웃음). 아들에게, 자녀들에게 교훈이 되는 글을 남기는 것 참 좋죠.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다시금 깨달았답니다.”

사실 그의 아들이 아빠의 글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다. 이제 겨우 일곱살에 불과하니까. 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표지 일러스트를 보면서 누가 아빠고 또 누가 자신인지 확인하는 것 정도라고. 먼 미래에 이 글을 아들은 어떤 심정으로 읽어낼까. 진심은 가만히 온기를 품고 아들을 기다려줄 것이다.


살아라.  너의 세상 속에

너의 우주 속에  살아라.

너의 시간 속에  살아라.


아빠는 말한다

‘삶은 언제나 약간은 즐거워야 한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풀려고 하지 말아라. 복잡한 문제는 복잡한 것이다.’ ‘죽기 전까지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없다. 삶의 짐이 없어질 것이라는 꿈을 버리자. 그건 헛된 기대이니까. 짐의 무게가 그나마 적게 느껴질 때, 흐르는 땀을 닦거라. 또 다시 짐이 무거워질 테니까.’

그가 아들에게 전하고픈 인생 법칙이다. 이밖에도 실제로 아빠라면 가까이에서 할 법한 이야기도 수두룩하다. 소식을 해라, 잘 자라, 물을 많이 마셔라, 선블록을 발라라까지! 흔한 잔소리가 아니라 삶의 내공이 느껴지는 귀여운 조언처럼 느껴진다면 나도 벌써 나이를 들었다는 증거가 될까. 

혹시 이제와 생각했을 때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했다. 아빠의 시간이 허락하는 한 필연적으로 분명 더하고픈 이야기가 생겨날 텐데, 어떤 방법으로 그 마음을 전하게 될 것 같은지 물었다.

“책에 못 다 적은, 더 해 주고 싶은 이야기 정말 많죠.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하며 쓴 내용인데도 나중에 보니 책에 담지 못해 아쉬운 내용이 많더라고요. 예컨대 “다른 사람들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하지 마라. 그에게 비보를 전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이 많단다.” 같은 것들 말이죠. 못 다한 내용을 모아 다시 글을 쓰고 싶지만, 아직은 시간이 허락되지 않네요. 우선은 아들이 자라날수록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틈을 더 넓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가 하면 첫 글부터 ‘경험’을 강조한 것은 다시 생각해도 잘 한 것 같아요. 사실 아무리 ‘인생 팁’을 이야기해줘도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뜬소리로 받아들이기 쉬우니까요. 그리고 저 스스로 가슴에 깊게 새기고 있는 것으로 ‘인내’를 꼽을 수 있는데요, 책 사이사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에요. 이 또한 인내를 경험한 저의 이야기로부터 비롯될 수 있는 조언이라고 생각해요.”

재능과 인내를 갖추라는 페이지는 기자의 눈길도 오래 사로잡은 대목이다. 힘들 때 한 걸음 더 가는 것이 인내라고. 두 걸음도 필요 없이, 단지 한 걸음만 더 내딛으라고. 인내가 없다면 재능은 애초에  갖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윤 교수 스스로가 본 재능은 무엇일까.

“제가 가진 재능이라면 ‘조심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게 말하면 신중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겁이 많은 거죠. 언제나 미리 준비하고, 만약의 경우를 염두에 두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일의 결과가 확실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으면, 되도록 일을 진행하지 않는 편이에요. 확실히 잘 될 것 같은 일들조차도 막상 일을 진행해 보면 여기저기 방해 요소들이 튀어 나와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마당에 결과가 잘 그려지지도 않는데, 그 일을 진행하는 것은 일종의 도박이라고 생각해요. 돌이켜보면 이런 조심성 덕분에 전반적인 일의 성공률이 높아졌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나 조심성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꿈을 믿는 일 아닐까. 윤 교수는 아들이 태어나던 날에야 비로소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생겼다고 말했다. 바로 ‘멋진 아빠가 되는 것’이다. 사는 동안 반드시 그 꿈을 지켜낼 거라고 다짐하는 그에게 그가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읽을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아들의 말간 얼굴이 아닐까, 하고 짐작해보았다.

마침 ‘하얀색 눈 빛깔을 유지해라’라는 그의 조언이 떠올랐다. 흰자위는 항상 흰 빛깔이 되도록 관리하라고, 어린아이와도 같은 약간 파란 빛을 머금은 하얀색 빛깔이라면 좋겠다고. ‘눈은 밖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뇌의 일부분’이라는 구절에서는 왠지 가슴이 뜨끔하기까지 했다. 살면서 숱하게 들었던 태도에 대한 조언 중에서도 인상적으로 남을 말이었다.

“제가 이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의대생 시절 안과 강의에서였습니다. 안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하는 말이죠. 엄밀히 말하면, 뇌와 연결되어 있는 부분은 시신경이고, 시신경은 밖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하얀색 눈 빛깔을 유지해라’는 말은 은유와 암시적인 의미가 강합니다. 아들이 항상 깨어있으며, 세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정의로운 마음을 지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이죠. 자신의 눈 빛깔에 관심을 갖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내면과 만나게 되어 자신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 기회도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요?”


브라보! 아워 라이프

윤 교수는 자신의 삶에서 지금의 기시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감성은 오래 전에 약해져 얼마 남아 있지 않고, 지성은 이제 내리막길의 초입을 지나가 있고, 관록은 이제 꽃잎을 막 피우려는 때’라고.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아들에게 이정표이자 쉼터 같은 공간을 만들어주기 알맞은 때임을. 언제나 책 한 권을 가슴에 품으라고 말하는 아빠, 그것이 잡지라도 만화책이어도 좋다고 말하는 아빠. 스스로 그것을 실천하는 아빠이기에 가능한 말이리라.

“저는 평소에도 다양한 많은 책들을 옆에 두고 있어요. 금전적으로 힘들 때에는 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에 대한 책을 찾아보고, 타인과의 관계 맺기로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대인 관계 개선을 돕는 책을 찾아서 읽는 식이죠. 그래서 제 책장에는 의학뿐만 아니라 물리학에서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 책들이 있어요. 한 번은 책을 출간하고 모니터링 차 서점에 갔는데 매대에서 제 책 바로 옆자리에 놓인 책이 눈에 띄더라고요.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이라는 책인데요. 작가가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으면서 쓴 에세이였죠. 마침 제가 의사이기도 하고, 이 책을 통해 환자가 느끼는 일상의 소중함을 조금 더 선명하게 그릴 수 있었어요.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조금 더 집중해야겠다는 반성도 했고요. 아무래도 감정을 나누기보다 진료와 치료를 위한 대화가 지배적이기 쉬우니까요. 환자들의 마음을 살피는 데에 부족한 의사이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됐죠.”

요즘의 그는 그야말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에 머물러 있다. 잠자는 아들을 얼굴만 바라보는 일상에 다시금 익숙해진 것이다. 그는 “너무 오랜 시간 이런 삶이 반복된 것 같다”며 짧게 토로했다.

“아들에게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저도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고 몸소 실천해야겠죠.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생각에 따라서 세상이 나에게 잠깐 왔다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잖아요. 나아가 내 세상은 곧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요. 이런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해요.”

끝으로 그는 아무리 인생의 조언을 전하는 책이 수두룩하더라도 부모와 자녀가 함께 만들어가는 순간과 견줄 수는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부모도, 아이도 ‘바쁘다’를 달고 사는 우리 사회이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금 더 가까워지자고. 더 자주 서로를 들여다보자고. 


- 출처: 교육매거진 <앤써> http://www.answerz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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