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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물들의 소리도 통역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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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소리 알아 듣는 AI '딥찍찍' 동물 소리도 통역이 되나요?

‘찍찍찍~~ 찍찍찍~~’
쥐들이 설탕을 보고 흥분해 소리를 지른다. 마치 주변 동료에게 “여기 설탕이 있어!”라고 외치는 듯 하다. 인간의 귀에 이 ‘찍찍’ 소리는 마치 쥐들의 대화처럼 들린다. 하지만 쥐는 서로 의사소통할 때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초음파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쥐가 내는 초음파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면 약물의 효과를 테스트하는 동물 실험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미국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그 가능성을 열었다. 쥐의 언어를 분석하는 인공지능(AI)을 개발했다. 닭과 개의 소리를 인식하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도 이미 등장했다.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세계 최초 쥐 언어 분석 AI ‘딥찍찍’

쥐는 대표적인 실험동물이다. 사람과의 유전적 유사성이 80~90%에 이르고, 생물학적으로도 신체 구조가 흡사하기 때문이다. 쥐는 초음파를 이용해 동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쥐가 내는 초음파(5만Hz)는 사람의 귀가 듣는 주파수(20~2만Hz)보다 높아 직접 들을 수 없다.

존 노이마이어 미국 워싱턴대 약리학과 교수팀은 쥐가 내는 발성을 분석하고 탐지하는 ‘딥찍찍(DeepSqueak)’이라는 딥러닝 기반 AI 프로그램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신경정신약리학저널’ 2019년 1월호에 발표했다.
doi:10.1038/s41386-018-0303-6

딥찍찍은 인간의 신경망을 흉내 낸 인공신경망을 이용했다. 연구팀은 우선 인공신경망에 쥐의 초음파 발성과 소음 데이터를 입력한 뒤 알고리즘을 통해 이를 학습시키고 쥐가 내는 소리와 다른 소음을 구분하게 했다. 그런 다음 쥐의 초음파를 초음파 사진으로 바꿔 이미지로 만들었다. 자율주행차에 사용되는 이미지 인식 AI 알고리즘으로 초음파 이미지를 해석하기 위해서였다.

연구팀은 이런 방식으로 딥찍찍을 이용해 쥐의 초음파를 분석했다. 그 결과 쥐는 약 20가지의 초음파 발성 패턴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행복한 상황은 설탕과 같은 보상을 기대하거나 동료와 놀 때였다. 이 때 쥐는 동일한 초음파를 반복적으로 내보냈다. 암컷이 등장해 수컷이 구애할 때는 초음파 패턴이 복잡해졌다. 초음파의 앞부분이 짧게 올라갔다가 뒷부분은 길게 늘어졌다. 이 때는 마치 남자가 여자에게 짓궂게 휘파람을 불어대는 상황을 가리키는 ‘늑대의 휘파람’과 같은 패턴을 나타냈다. 암컷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냄새만 풍길 때는 수컷의 초음파 발성은 더욱 복잡했다.

연구팀은 딥찍찍을 이용해 약물이 쥐의 뇌에 미치는 영향도 확인할 계획이다. 노이마이어 교수는 “약물이 쥐의 쾌락이나 불쾌감을 유발하는 과정과 쥐의 뇌 활동 변화를 이해하는 게 목표”라며 “이를 통해 술이나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에 중독된 사람을 치료할 방법을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희는 대표적인 실험동물이에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죠. 이번 실험에서는 저희가 대화하는 걸 엿들으려고 한다네요. 원래 사람들은 저희가 대화에 사용하는 초음파를 못 들었는데, 이상한(?) AI가 개발됐다나 봐요. 사생활 침해 아닌지 모르겠어요"

‘꼬꼬댁 꼬꼬’ 울음소리로 건강 상태 확인

닭의 울음소리를 분석하는 AI ‘딥꼬꼬’도 개발됐다. 웨인 데일리 미국 조지아공대 농업기술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이끄는 연구팀은 닭의 울음소리 패턴을 분석하는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2014년 12월 국제 신호정보처리학회인 ‘IEEE 세계 신호 및 정보처리 컨퍼런스(Global SIP)’에서 발표했다.

식용 닭은 대체불가 육류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약 500억 마리가 소비되고,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소비량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육류수출입협회에 따르면 2005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연간 닭고기 소비량이 약 10kg에서 2010년 14kg으로 늘었다.

연구팀은 5년간 대형 양계장에 있는 닭들의 울음소리를 녹음했다. 이후 이 울음소리를 AI에 학습시켰다. 닭의 울음소리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상황에 따라 울음소리가 달랐다.

독수리와 같은 천적을 하늘에서 목격한 경우에는 수컷이 ‘꽥’ 하듯 짧고 높은 음의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런 울음도 주변에 암탉이 있는 경우에만 나타났다. 암탉이 없으면 독수리가 나타나도 울지 않았다. 천적이 땅에 있는 경우에는 반복적으로 ‘꼬꼬댁’ 소리를 내며 주위를 감시했다.

방금 알을 낳은 암탉은 마치 이를 자랑스러워하듯 근엄하고 짧게 ‘꼬꼬댁’ 울었다. 먹이가 제공되거나 쾌적한 온도에서는 만족스럽다는 듯 지속적으로 ‘꼬꼬댁 꼬꼬’라며 노래를 불렀다.

연구팀의 주된 관심사는 닭의 건강 상태였다. 고온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울음소리가 달라지는지 조사했다. 현재 연구팀이 개발한 AI는 고온에서 닭이 불편할 때 내는 울음소리를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이다.

데일리 수석연구원은 2017년 12월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과의 인터뷰에서 “양계장 주인들은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뭔가 불편하다는 걸 알아채지만,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 답답해했다”며 “닭이 처한 상황에 따라 소리의 진동수와 진폭, 세기(loudness) 등이 미세하게 다르기 때문에, AI 프로그램이 이를 분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닭대가리’라면서 멍청하다고 무시하지만 실제로 저희는 그렇지 않아요. 저희끼리 엄청 복잡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요. 나중에 딥꼬꼬를 통해서 저희 대화 한번 들어보면 아실 거예요"

‘멍멍’ 개 소리 번역기 개발 중

개는 수천 년간 사람 곁을 지킨 반려동물이다. 반려인들은 언제나 반려견의 마음을 속 시원히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미국 동물학대방지단체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매년 약 300만 마리에 이르는 개들을 안락사 시키고 있다. 그 중 80%는 건강상의 이유가 아니라 인간을 공격하는 문제견으로 인식돼 안락사 된다. 콘 슬로보드치코프 미국 북애리조나대 생물학과 명예교수는 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이런 무분별한 안락사가 일어난다며 개의 언어를 해독해줄 번역기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슬로보드치코프 교수는 2017년 줄링구아(Zoolingua)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줄링구아는 동물의 소리와 표정, 신체 움직임을 번역하는 도구들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곳으로, 슬로보드치코프 교수는 AI를 이용해 개의 언어를 번역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2018년 1월 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동물은 언어의 모든 요소를 갖춘 정교한 의사소통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며 “인간이 동물과 의사소통하게 된다면 반려동물의 행동을 추측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반려동물의 생명까지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슬로보드치코프 교수는 개가 짖는 소리를 수천 개 수집해 AI에 학습시키고 있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개의 울음소리를 해석해 동물의 심리를 인간의 단어로 번역하는 것이 목표”라며 “‘산책하고 싶다’ ‘배고프다’ 등에 해당하는 울음소리를 완벽히 해석할 수 있는 번역기를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인들과 빨리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답답하거든요. 하루는 밥 달라고 ‘멍’하고 짖었는데, 공을 던져주더라고요. 그리고 문제견으로 낙인 찍힌 친구들의 억울함도 풀어줘야 한다고요. 하루빨리 번역기가 개발됐으면 좋겠어요"
  • 출처동아사이언스 과학동아 (http://www.dongascience.com/)
  • 글 및 사진글 고재원 기자 + 사진 G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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