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질이란 모든 사람의 타고난 경향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모두 다른 기질을 갖고 태어난다.
하지만 소위 “좋은 육아법”이라고 하는 이론들은 모두 비슷비슷한 말만 반복한다. 최은정 대표는 말한다.
아이가 갖고 있는 기질에 따라
각기 다른 육아법이 필요하다고.
Written by 최소희 Photo by 김소연
당신은 당신의 아이를 모른다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럴까?” 아이를 키우면서 누구나 한 번씩은 드는 생각이다. 이해할 수 없고, 예측하기 힘든 아이의 행동은 부모를 혼란에 빠트린다. 한 사람을 키워내는 일은 결코 물 흘러가듯 술술 풀리지 않는다. 매일 같이 고민하고, 좌절해야 한다. 험난한 육아 과정을 거치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부모들에게 육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는 최은정 <WithYou 치료교육연구소> 대표를 만나보았다.
최은정 대표는 지난 15년간 여러 복지관과 대안학교, 그리고 아동가족상담센터와 보육원에서 1,000명이 넘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만나왔다. 수많은 고민들을 마주하며 육아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이에 아이들마다 타고난 경향성이 있으며 이 기질에 따라 다른 육아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불안과 걱정으로 표현되지 않도록, 사랑이 사랑으로 전달되도록 돕는 육아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는 것이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처음엔 초중고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심리치료를 진행했어요. 하지만 유아기를 지난 아이들의 경우 이미 어느 정도의 사회경험을 거쳤기 때문에 자아의 상태와 어려움이 굳어져 있는 상태에요. 문제적 행동을 치료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조금 더 어렸을 때 이 아이를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초중등 아이들의 심리적 문제는 결국 유아기 시절의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아이들의 문제에 더욱 근본적인 도움을 주고자 유아동 치료와 상담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기질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성격의 타고난 특성’이라는 의미로 한 사람을 특정하게 해주는 요소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좀 더 편한 쪽이 있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방향. 그것이 바로 경향성이라고 최은정 대표는 말한다. 물이 흐르는 냇가에 돌을 쌓아 흘러가는 모양을 다르게 할 수는 있지만,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성질을 바꿀 수는 없는 것처럼 개인의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일생을 만드는 기질, 제대로 알아야 현명하게 키워낼 수 있다.
아이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내 아이의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알지 못한다. 문제 상황에 몰입되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한걸음 물러나야 한다. 아이의 행동을 감정이나 주관을 배제하고 타인의 눈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휴대폰 카메라나 캠코더로 아이와의 생활을 녹화하여 스스로를 모니터링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그녀의 팁이다.
“일단 아이의 기질을 파악했다면 부모님들이 집중해야 할 것은 아이의 약점이 아닌 강점이에요. 바로 그곳에 아이의 즐거움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에 약점부터 서둘러 고치려 합니다. 걱정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화가 되어 아이를 다그치게 됩니다. 아이는 점점 자신을 질책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게 돼요. 어른이든 아이든 자신의 약점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약점을 보여도 괜찮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가정은 이런 도전이 가능하도록 아이에게 확실한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이는 자신의 탁월함을 충분히 발현하고 약점을 보완해가며 자신만의 빛깔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질 육아’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아이를 키우려 하다 보면 불안해져요.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내 아이에게만 집중해야 합니다.
아무리 교사나 상담사가 노력하더라도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양육자의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올바른 양육은 어렵습니다. 사회가 인정하는 기준만이 아이의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의 기질이 당장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보이더라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기질이건 고정관념을 버리고 잘 다듬어
방향을 제시해준다면 반드시 올바른 길로
가게 돼 있습니다."
사회의 기준을 버려라
기질이란 특성 자체일 뿐, 좋고 나쁨이 없는 것이다. 아이의 높은 민감성이 어떻게 발현되느냐에 따라 약점이 될 수도 있고 강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발견된 기질을 부모의 기준으로 섣불리 판단하고 억압하려 하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아이가 갖고 있는 기질을 키우거나 보완하여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것뿐이다.
“말도 못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소리에 극도로 예민하고, 고집도 매우 세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루 종일 악을 쓰며 심하게 우는 세 살 남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도무지 소통이 되지 않으니 병원에서는 ‘자폐’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봤을 때, 자폐가 아닐 수 있는 단서들이 보였어요. 아이의 기질을 파악하고 보니 민감성이 매우 높고 자신의 욕구를 강력하게 표현하는 아이였어요. 6개월 간의 치료 끝에 말문이 트이고, 소리에 대한 높은 민감성을 강점으로 살려 악기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엄마가 사라져도 울지 않고, 유난히 행동이 느려 병원에서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기질을 검사해본 결과 정서적으로 매우 민감하나 이를 극도로 억제하는 ‘억제성 기질’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6개월 간 엄마와 함께 아이의 억제된 감정을 조금씩 열어주는 치료를 진행했습니다. 아이의 탁월한 인지능력을 활용하여 감정을 조직화하여 이해하게 하니, 숨겨져 있던 활발한 기질이 드러나게 됐습니다. 이후 아이는 탁월한 인지능력을 마음껏 발현하여 영재 진단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만약 아이의 문제 행동만을 보고 병으로 진단해버렸다면 어땠을까요? 아이의 강점은 사장되고 비정상군으로 분류되어 소진적인 사회성 치료를 반복하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위의 사례처럼 아이의 기질을 다듬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꼭 필요한 일입니다.”
육아를 넘어 삶의 든든한 멘토가 되는 것
최은정 대표는 치료가 끝난 후에도 아이와의 관계를 지속하며 성장과정을 지켜본다. 주기적으로 치료에 몰입해야하는 시기가 지나면 문제가 해결됐다 생각하지만 육아라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언제든지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부모님의 육아 가치관이 흔들릴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아이의 기질을 이해하고 온전히 믿어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세상의 기준에 맞춰 아이를 키우려 하다 보면 불안해져요.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내 아이에게만 집중해야 합니다. 종종 저희 연구소에 찾아오는 부모님들 중 아이의 타고난 기질을 무시한 채, 자신의 기준만을 강요하는 분들이 있어요.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어야할 부모님이 아이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죠. 아무리 교사나 상담사가 노력하더라도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양육자의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올바른 양육은 어렵습니다. 사회가 인정하는 기준만이 아이의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의 기질이 당장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보이더라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기질이건 고정관념을 버리고 잘 다듬어 방향을 제시해준다면 반드시 올바른 길로 가게 돼 있습니다.”
육아를 넘어 삶 전체를 바꾸다
사회의 기준보다 아이의 기질을 믿으라고 말하는 그녀의 확신에 찬 눈빛에서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엿보인다. 언뜻 비친 바로 그것이 그녀가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아이들을 연구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기질에 대한 그녀의 뜨거운 관심이 향하는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저와 상담을 진행한 아이들이 끝까지 자신의 기질을 믿고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요. 나쁜 기질이란 없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발현하느냐의 문제이지요. 기질을 이해하고 잘 다듬어 주면 아이의 삶이 바뀝니다. 이러한 변화를 제가 직접 연구하여 증명하고 싶습니다. 특정 기질을 가진 아이가 부모의 양육 스타일과 환경에 따라 어떤 영향을 받는지, 치료를 진행한 아이들이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 나아가 성인이 됐을 때에 어떤 배우자를 만나게 되고 노년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분석하여 남기고 싶습니다. 기질이란 육아뿐이 아닌 한 개인의 삶 전반을 아우르는 문제입니다. 기질로 인한 문제로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결과를 내는 것이 저의 최종목표입니다.”
- 출처: 교육매거진 <앤써> http://www.answerz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