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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 번을 흔들려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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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소개
김지혜 작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자

작은 일 하나에 온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시절이 있었다. 

끝없는 불안 속에서 풀꽃처럼 흔들리던 때가. 

이제와 생각해보면 코웃음이 날정도로 사소한 일이지만 그때는 

작은 바람에도 쓰러지곤 했다. 그렇게 쓰러졌다 일어나길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이제는 나름의 생존방식을 찾아 웬만한 일로는 가슴앓이를 하지 않는다. 

‘죽는 것 아니면 큰일 안 난다’는 무심해보이기도 하는 말에 

조금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푸석푸석하고 

딱딱한 껍데기를 두른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Written by 최소희  Photo by 김인철



나를 흔들리게 하던 수많은 고민의 잔가지들은 세월을 지나옴에 따라 대부분 사라졌다. 생존에 필요한 물음과 답만이 반복되는 단순한 세상에서 이제는 사는 일이 그리 낯설지 않다. 이따금씩은 ‘사는 게 참 별것 없다’는 생각과 함께 ‘너무 쉬운 삶’에 대한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누군가, 시간을 거슬러 다시 그 때로 돌아가게 해준다 한다면 나는 선뜻 나서지 못할 것 같다. 한 번 겪어본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유도 없이 몰아치는 그 불안의 소용돌이는 여전히 두렵기만 하다. 십대, 그들은 지금 끝없이 흔들리며 삶을 헤쳐 나갈 힘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쉬워 보이는 삶은 있어도  쉬운 삶이란 없다


어른들은 모르지 않는다. 다만 잊고 있을 뿐이다. 김지혜 작가는 그 시절의 감각을 잊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는 선생님이다. 그녀는 학교 현장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동시에 상담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요즘 십대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그녀의 저서 <아무것도 모르면서>에 나오는 사례를 보면 ‘친했던 친구가 뒤에서 내 험담을 했어요’, ‘선생님이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아요.’ 등 다양하다. 언뜻 유치해보이는 고민들이지만 김지혜 작가는 학생들을 미성숙의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녀가 가르치고 있는 사춘기의 소년 소녀들은 우리 모두가 그렇듯, 그 시절 감당해야 할 것들을 온몸으로 버텨내고 있는 어엿한 인간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고민에 대해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해버리곤 해요.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하기 때문에 그런 고민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고 여기는 거죠. 하지만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고 그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 그들의 문제를 들어주고 가슴 깊이 공감해주는 사람이 꼭 필요해요.”

선생님의 본분인 수업만 해도 바쁜 일정에 아이들의 이야기까지 듣기 위해서는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터. 누군가 시키지도, 그렇다고 이력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단순히 교사로서의 의무감 때문만은 아닌 듯 했다. 

“제가 2003년도에 임용이 되어 학교에 가게 되었어요. 처음이기도 했고, 발령받은 학교가 아이들이 말을 안 듣기로 유명한 남중이었기에 잔뜩 긴장한 채였죠. 아이들에게 얕보일까 걱정하며 일부러 엄한 모습을 보이려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학기 초, 임시반장을 뽑는데 체격도 작고 아직 아이 같아 보이는 친구가 지원했어요.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매일 아침 교무실로 와서 필요한 것 없냐고 물어보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어요. 그런데 6월쯤 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어요. 걱정되는 마음에 병문안을 가기로 결심했죠. 온몸에 호스를 꽂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나니 ‘그동안 매일 교무실을 오르내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하는 미안함과 함께 ‘내가 정말 학생들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단은 아이들이 수학을 잘했으면 좋겠어요(웃음). 

수학 선생님으로서  미련을 버릴 수 없는 점이에요. 

사실 수학만큼 정직한 학문이 없거든요. 

수학도 인생도 거짓 없이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어떤 교사가 될 것인가


이 사건으로 그녀는 ‘어떤 교사가 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일은 교육기관이나 온라인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는 다만 공부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친구의 소중함, 함께 하는 이를 배려하는 방법, 영원히 잊지 못할 학창시절의 추억까지. 삶을 살아가는 데에 없어선 안 될 것들을 배우며 한사람으로서 성장하는 장소이다.  

“처음 교사가 되리라 마음먹었을 때, 아이들을 바르게 이끄는 일 보다는 수학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수학시간을 괴로워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공부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렇게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보니, 그들 나름대로 공부보다 중요한 고민들을 안고 있었어요.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이 먼저라는 판단을 하게 됐죠.”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신호를 보낸다. 자신의 상황을 알아주고 관심을 가져달라는 신호. 하지만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바쁜 업무로 인해 알아채지 못하거나, 지나치기 마련이다. 이에 그녀는 학생들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형식적인 상담은 물론, 점심시간, 쉬는 시간, 방과 후 학교 밖에서까지 아이들을 찾는 일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학생들과의 접점을 찾는 그녀를 보고, 학창시절 이런 선생님을 만났다면 지금의 내가 조금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스쳤다. 사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센터는 비교적 많은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자리에서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어쩌면 선생님이란 아이들의 본모습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자리잖아요. 최근 학생들의 정신건강 관리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상담, 정신과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지요. 하지만 학생들의 고민과 상처가 곪아터져서 그곳에까지 가기 전에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선생님의 관심은 그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될 수 있거든요.”


새로운 세상에서 삶을 깨닫다


그녀는 처음 파견을 간 이후 꽤 오랜 시간 동안 해외 한국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선양한국국제학교, 연대한국학교를 거쳐 천진한국국제학교에 이르기까지. 결코 평범한 선생님의 이력은 아니었다. 어떤 보이지 않는 손길이 그녀를 이국의 낯선 땅으로 이끈 걸까. 

“저는 사실 교사가 되기 전까지 한 번도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어요.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 날의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 부은 셈이죠. 그런데 교사가 되고 나자, 이전까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새로움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리더라고요. 그래서 재외 한국학교 근무를 지원하게 되었어요.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참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환경은 물론,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계속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사람을 좋아하고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 있는 그녀에게 해외 파견 교사의 삶은 어쩌면 필연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그녀는 중국 천진에 있는 한국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고국을 떠나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에겐 저마다의 아픔이 느껴져 더욱 정이 간다고. 그중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는지 물어봤다. 

“기억에 남는 한 친구가 있어요. 외국어 공부를 위해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친구였어요. 말도 잘 듣고 얌전해서 특별한 걱정이 없었죠. 한번은 학교에서 개최한 글짓기 대회에서 가족에 대한 글을 썼는데, 작품에서 함께 하지 못하는 가족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묻어났어요. 이후 상담주간에 그 친구의 어머니, 아버님이 함께 오셔서 그 작품을 보여드렸더니, 아이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다며 눈물을 보이시더라고요. 가족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함께 사는 부모라 할지라도 아이들이 학교, 즉 사회에서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학교생활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다행한 일이겠지만, 아이의 마음과 안전에 관련된 일을 마냥 운에 맡길 수는 없는 노릇. 이때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학교 선생님이다. 의무 이전에 어른으로서의 도리이자, 오랜 시간 교직 생활을 하며 그녀가 발견한 선생님의 또 다른 본분이다.


수학처럼, 정직하게


인터뷰가 막바지에 접어들며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는지 물었다.

“일단은 아이들이 수학을 잘했으면 좋겠어요(웃음). 수학 선생님으로서 미련을 버릴 수 없는 점이에요. 사실 수학만큼 정직한 학문이 없거든요. 수학도 인생도 거짓 없이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수학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는 재미있게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을, 마음이 아픈 아이들에게는 함께 고민하는 따뜻한 마음을, 권태를 이기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전을 향한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선생님.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사의 모습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각기 다양한 고민을 안고 누구에게 털어놓아야 할지 몰라,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럴 때 누군가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해결책을 내놓을 수는 없어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길을 찾는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을요. 같은 고민이라도 혼자라고 생각하면 막막하잖아요. 저도 아이들에게 관심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겁니다.” 



- 출처: 교육매거진 <앤써> http://www.answerz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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