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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신에 대한 믿음이 나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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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소개
문지현 작가
문지현 <정신과 전문의>

무기력이 사회적 분위기로 일반화 되며 조그만 좌절에도 주저앉아 다시 일어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마음의 힘이 약해진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특히나 어렸을 때부터 끝없는 경쟁과 비교 속에서 살아온 요즘의 청소년들에게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워주는 것이 절실하다. 

누구에게나 좌절은 오지만 그것으로 인해 주저앉을 지,  딛고 일어설 지를 결정짓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의 차이이다. 

Written by 최소희  Photo by 김소연



내 아이의 시대를 이해하자

동화작가들은 어린 시절의 상상력을 잊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문지현 미소의원 원장은 아직 동심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청소년을 위한 심리치유서인 <십대답게 살아라> 외에도 <십대 고수답게 싸워라>, <우정이 맘대로 되나요>, <내 마음 누가 이해해줄까>, <부글부글 십대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최근에 발행한 책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에게>의 저자이기도 한 그녀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십대 시절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다고.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청소년기는 자기 자신과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흔들리는 시기이다. 더불어 자아가 확립되는 시기이기도 해,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앞으로 인생의 주도권을 쥐게 될 수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지금까지 청소년이 흔들리지 않는 세대는 없었다. 하지만 반항하고 불복하는 등 에너지를 분출하며 문제를 일으켜왔던 이전의 청소년들과는 달리 에너지 자체가 소멸되어 발생되는 요즘 청소년들의 문제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즘 청소년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문제가 심각하다 생각하지는 않아요. 단지 제가 안쓰럽게 생각하는 것은 ‘우린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헤쳐 나갈 방법이 있을 거란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요새는 ‘이젠 안 돼, 방법이 없어’같은 생각들이 유행처럼 퍼져 있는 게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입니다. 아이들과 상담을 하며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무기력에 대한 이야기에요. 자기도 적극적으로 생활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죠. 머리로는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몸은 말을 안 들어서 힘이 드는데, 주변 사람들은 다 자기더러 ‘넌 왜 안 하냐?’ 다그치기만 한다고 생각하죠.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힘든 걸 몰라준다고 생각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어른의 시선에서는 무엇 때문에 아이가 저렇게 힘들어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아이의 어려움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봐야 하는 법. 청소년기에는 신체적 발달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어른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일상생활을 소화하는 데에 부모의 도움이 필요 없어지고 독립적인 성향이 강해지기 때문에 자칫 어른과 같은 기준으로 아이의 문제를 바라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아이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 무릎이 깨지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엄마를 부르던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아이가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고 익숙해지는 데에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청소년들은 낯설거나 어려운 환경이 닥쳤을 때 굉장히 힘들어해요. 하지만 한편으로 그만큼 회복이 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에 뿌듯한 순간도 많이 만나게 되죠. 대단하고 어마어마한 성공은 아니지만 작은 것에서라도 ‘난 안 돼’라는 생각이 ‘어, 어쩌면 나도 될 수 있을 것 같아, 되는구나!’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기쁨은 다른 어떤 행복과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랍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만나던 여학생이 있었어요.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너무 강해서 ‘살아서 뭐하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데’하는 태도로 매일을 지내고 있었죠. 자해까지 할 때도 있었는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거라는 말에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약도 먹어보고, 상담도 받아가며 힘들게 청소년기를 지냈어요. 하지만 본인도 포기하지 않았고, 부모님들도 아픈 마음 부여안고 딸을 기다려주셨어요. 그러면서 아주 조금씩 회복이 되어갔어요. 

이 친구는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그럭저럭 공부를 하다가 2학년 말에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공부에서 손을 놔버렸던 경우라 1, 2학년의 성적으로 대학을 갈 수 있었어요.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우울증이 다 좋아지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됐죠. 아이 스스로도 ‘내가 과연 대학을 다닐 수 있을까’,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 등 앞질러 걱정(우울증의 가장 큰 특징)을 잔뜩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막상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좋아지고 있는 모습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어요. 작지만 자기가 해낼 수 있는 일들을 발견하고, ‘해야 해서 하는 것’들이 아닌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적극성을 띄게 되고 기분의 질 또한 좋아진 거죠. 어느 날인가는 남자친구도 사귀어서 함께 병원에 왔더라고요. 워낙 우울증이 심했기 때문에 아직도 치료를 지속해야 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밝은 아이가 됐어요. 언젠가 그 친구가 한 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선생님, 저 그 때 자살하지 않기를 정말 잘했어요. 요새는 사는 게 행복하거든요. 저도 행복해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못했었는데.”


"저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잘 해내는 것이  유일한 목표에요. 특별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어렵고 또 중요한 일이거든요. 청소년이든, 청년이든, 학부모든, 노인이든….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은 넘어질 때가 있어요. 각자 자기 삶의 밑바닥을 쳤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져서 병원을 찾은 분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드리는 거예요. 어려운 시기만 넘길 수 있도록 도와드리면 또 잘 지내실 수 있는 분들이니까요."


묵묵히 기다려주는 것

어른들은 크든 작든, 살면서 힘들었다가 회복된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좋지 않은 상황이라도 결국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연 얘가 사회에 나가 잘 살 수 있을까?” 했던 그 아이들조차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 정도 자기 앞가림은 하게 된다. 그간의 살아온 경험을 통해 상황 밖에서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어려운 상황들을 난생 처음 마주하기 때문에 쉽게 당황하고 절망하게 된다. 당시의 상황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유가 없고 자아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는 주변의 어른들이 별 것 아니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아이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힘들어하는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 아이를 위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문지현 원장의 답은 간단하다. ‘묵묵히 기다려 주는 것.’

“그간 청소년 상담을 진행하며 수없이 많은 부모님들을 만나 왔습니다. 아이의 문제마다 부모님이 해주셔야 하는 일은 다 다르지만, 단 하나, 모든 부모님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위의 여학생 사례에서도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부모님의 기다림’이었습니다. 자신의 딸이 살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아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우셨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딸을 믿고 묵묵히 기다려주신 결과, 본인의 믿음대로 다시 밝아진 딸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부모님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또한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그녀는 상담을 진행하며 더욱 원활한 치료를 위해 종종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에게도 숙제를 내준다. 종류는 다양하다. 사랑한다고 말해주기, 맛있는 것 해주기, 칭찬해주기 등. ‘무언가 하는’ 숙제를 내주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수월하게 해낸다. 내가 했던 실수를 우리 아이는 안 했으면 좋겠으니까, 무엇이든 도움을 주고 싶어 하고, 그 누구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묵묵히 아이의 곁을 지키는 “기다려 주는 것”은 상담 치료를 중단하게 될 정도로 힘들어 한다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이는 다시 조급함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아이의 문제적 현상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괴롭기 때문에 하루 빨리 아이가 이겨내기를 바라게 되고 이는 또 아이에게 부담을 주게 된다.   

“저는 아이들이 갖고 있는 스스로의 탄력성을 알고 있어요. 부모님들은 사랑으로 인한 걱정과 조급함 때문에 못 보실 때가 많아요.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는 수도 없이 넘어지며 일어나는 법을 배워요. 청소년 시기에는 마음이 많이 넘어지는 시기인 거예요. 수도 없이 마음이 좌절 되어도 묵묵히 기다려주신다면 아이들은 결국 일어납니다. 나중에 힘든 상황이 닥쳐도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튀어오를 수 있게 되죠. 아이들마다 자기 자신의 속도와 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묵묵히 아이들을 기다려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어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수많은 사람들과 상담을 하며 그들이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자신의 일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특히 겉으로 봤을 때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의 문제들을 지고와 털어 놓을 때면 행복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내담자의 고민을 경청한다는 점에서 이미 그녀의 삶은 한 결 풍부해 지고 있다. 그녀의 최종 목표가 궁금하다.  

“저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잘 해내는 것이 유일한 목표에요. 특별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어렵고 또 중요한 일이거든요. 청소년이든, 청년이든, 학부모든, 노인이든….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은 넘어질 때가 있어요. 각자 자기 삶의 밑바닥을 쳤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져서 병원을 찾은 분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드리는 거예요. 어려운 시기만 넘길 수 있도록 도와드리면 또 잘 지내실 수 있는 분들이니까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세상의 모든 지혜를 모으던 사람이 어려울 때든 좋을 때든 이 한 마디로 힘을 낼 수 있는 깨달음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죠. 이 말을 꼭 기억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 어두운 시간에도 끝은 있어요. 지금 당장은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말이에요. 이 말은 잘 나가서 승승장구 할 때도 기억해야 하죠. 끝이 있다는 걸 기억한다면 교만과 자아도취로 넘어지는 일은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지금 자기 자리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잘 하고 계시는 거예요. 오늘까지 잘 살아온 여러분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 출처: 교육매거진 <앤써> http://www.answerz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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