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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올바른 가치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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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소개
김예원 공익변호사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작가

그녀를 만나기 전 ‘법조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법조인이라면 어쩐지 사무적이고, 냉정할 것 같은 이미지가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쾌활한 웃음과 함께 문을 들어서는 그녀를 마주하곤,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터뷰 내내 그녀의 밝은 웃음소리가 촬영장 안을 가득 채웠다. 

Written by 최소희  Photo by 김소연



몰랐던, 그들의 세계에 눈을 뜨다

김예원 변호사는 2009년 제 51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41기를 수료한 뒤로 줄곧 장애인의 인권 향상을 위해 활동해 온 인물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공익재단법인 동천에서 공익변호사의 길을 시작했고 이후 장애인 인권의 참담한 현실을 깨닫고 서울특별시 장애인권센터에서 근무하게 된다. 장애인 인권을 위한 그녀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느껴 2017년부터는 직접 비영리 1인 법률사무소인 장애인권법센터를 설립,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국의 장애인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오른쪽 눈을 잃은 장애 당사자다. 그런 그녀가 장애인 인권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본격적인 공익변호사의 일을 하기 전까지 장애인 인권에 대해 무지했다고 말한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을 뿐만 아니라, 비평준화 지역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생활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장애인 인권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과거 사법연수원생들은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2개월간 실무수습을 해야 했는데, 동기들 중 ‘변호사의 공익활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었고, 실무수습을 앞둔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어디에서 일을 해야 더 의미 있을까’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장애인, 난민, 가정폭력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였다. 

실무수습을 마치고 다시 모인 동료들과의 대화는 충격적이었다. 그간 각종 매체를 통해 파악하고 있던 장애인들의 생활 및 인권 수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기 때문. 각기 다른 기관에 배정돼, 모두 다른 처지의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모두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고, 이미 일상적인 차별과 인권침해에 무감각해져 있는 상태였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그녀와 동료들은 부당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그 결과, 공익변호사의 생계비 지원을 위한 기금을 만드는 데에 이르게 되는데, 처음엔 함께 하는 몇몇 동료들과 조금씩 돈을 모으기 시작했던 것이 점차 다른 이들에게까지 알려져 ‘감성펀드’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이 기금은 41기 연수생들의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지 않고 이듬해 42기의 ‘낭만펀드’, 43기의 ‘파랑기금’, 45기의 ‘공익법률기금’으로 이어지며 사법연수원의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법시험 폐지로 인해 연수원이 없어진 지금은 서울시의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 운영되고 있다. 


분노는 나의 힘

김 변호사는 공익재단법인 동천에서 일하며 본격적인 공익변호사로서의 활동을 결심하게 되는 사건을 만나게 된다. 바로 ‘원주 귀래 사랑의집 사건’이다. 이 사건은 스스로 목사라고 주장하는 한 남성이 발달 장애인 21명을 호적에 올려 정부 지원금을 타내는 데에 이용하고, 폭행과 학대를 일삼으며 사망에 이르게 하며,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다. 경찰이 건물의 문을 부수고 들어갔을 때에는 네명의 생존자만 남아 있었고, 나머지 17명의 장애인들은 사망한 상태였다. 또한 무차별한 폭행과 학대로 장애인이 사망하면 다른 장애인을 데려와 인원을 유지했기 때문에 정확한 피해자의 추산이 불가능 할 정도로 피해 규모가 엄청났던 사건이다. 

“당시 그 참담한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에 원초적인 분노를 느꼈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장애인이 피해자인 사건의 경우, 피해자 측이 먼저 사건을 의뢰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직접 그녀의 사무실을 두드리는 경우는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기에 상황이 나은 편에 속한다. 중증 장애인의 경우, 부당한 상황에서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기 어려울뿐더러,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루트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힘으로는 문제 상황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사건을 기다린다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가 없다. 그래서 김예원 변호사는 오늘도 전국을 누빈다. 신문, 방송 등 미디어를 통해 사건을 찾기도 하고, 지역 동사무소, 장애인활동지원사 등 장애인들의 생활을 파악하고 있는 이들의 연락을 받기도 한다. 의심될 만한 상황이나, 문제적 상황이 포착되면 접촉하여 개입이 필요한 상황인지 판단하고 당사자의 의향을 확인한 후, 사건을 진행한다. 



"그녀는 장애인 인권 활동가이기도 하지만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는 그녀. 

빨래와 청소를 하며 스트레스를 푼단다. 

크리스천인 그녀는 매일밤 아이들과 함께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음에 감사하는 기도를 한다. 

작년 딸아이가 크게 앓고 나서  일상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 치 앞도 모르는 삶에서 지금 이 순간 가장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그녀의 인생 신조다."



차별과 편견을 교육하는 학교

김변호사는 장애인 인권에 대한 사건이라면 전국 어디든지 찾아간다. 특히 <앤써>의 지면을 통해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 했다. 그녀에게 들은 학교 내의 차별과 인권 침해 사례는 어찌보면 ‘사건’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작은 일이었지만, 그런 작은 일들이 어린 아이에게 사회가 정한 약자의 위치를 확인케 하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장애라는 조건에 대한 대우로 받아들였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파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장애인 아이에게 ‘나는 네 담임이 아니야, 네 담임한테 가’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해당 선생님은 법적으로 장애학생의 담임이었지만, 장애학생의 애로사항을 관리하는 특수교육 선생님에게 가라고 한 것이다. 아이들 사이의 따돌림은 예삿일이다. 그녀가 말해준 사례들은 명백한 인권침해의 상황으로 보였다. 하지만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의 경우 법적절차는 최후의 수단이다. 변호사는 사건을 처리하고 나면 그 상황, 공간에서 벗어나지만, 아이의 경우 어쨌거나 그곳에서 계속 사회생활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그녀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에 집중한다. 학생 및 선생님들에게 인권교육을 받게 하기도 하고, 장애학생에게 우호적인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그룹으로 만들어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서로의 오해를 풀 수 있도록 돕는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학교 내의 사건의 경우 법적으로 해결했을 때보다 민주적, 도의적으로 다가가는 경우가 더욱 원만하게 해결될 때가 많다고.


‘장애’인 아닌, 장애‘인’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해도, 아직 장애인을 대하는 비장애인의 태도는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우선 장애인을 마주하면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떤 도움을 줘야하지?’ 사람 자체보다 그 사람이 가진 ‘장애’에 압도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상대를 나와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타자화는 편견을 불러오고 차별을 낳게 된다. 그녀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방법 같은 건 없다고 말한다. 그저 나와 같은, 어제 만난 친구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문제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라고 하면, 오직 그가 가지고 있는 장애의 종류에 따라 분류되고 인식된다.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선호 등 한 인격체를 정의하는 본질적인 것들은 배려를 내세운 일반화 앞에서 사라지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집중이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애가 아닌.

오랫동안 편견과 차별 속에서 살아온 장애인들은 부당한 대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에도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체념했다고 해서 마음속의 분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김예원 변호사는 그런 피해자의 마음속에 억압돼 있는 분노를 이끌어내고 자신이 응당 누려야 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처음엔 가해자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피해자가 나중에는 재판장에서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할 정도로 강해진 모습을 볼 때, 잘못된 것이 바로 잡히는 것을 볼 때 그녀는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불합리한 현실 앞에 가슴이 답답한 순간도 있다고. 대부분의 문제들이 사건을 진행하며 어느 정도 해결이 되지만, 종종 제도적인 허점으로 인해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재판장까지 가서, 변호사라는 사람까지 합세해서 노력했는데 모든 문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당사자의 입장에선 좌절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인 미비, 혹은 허점을 없애기 위해 그녀는 입법 활동도 계속해오고 있다. 


나란히 앉아 다독여 줄 수 있는 사회

그녀는 장애인 인권 활동가인 동시에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는 그녀. 빨래와 청소를 하며 스트레스를 푼단다. 크리스천인 그녀는 매일밤 아이들과 함께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음에 감사하는 기도를 한다. 작년 딸아이가 크게 앓고 나서 일상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 치 앞도 모르는 삶에서 지금 이 순간 가장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을 하자는 것이 그녀의 인생 신조다. 

우리는 종종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 하곤 한다. 김예원 변호사가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위해 이처럼 노력하는 것도 바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움직임일 터. 우리는 인간이기에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모두가 그 방향성은 인정하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도 그 지향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우리의 이기심 때문일 것이다. 이기적인 사회 분위기는 다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세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학력, 집안, 스펙 등 갖가지 기준으로 서열을 정하고 줄을 세운다.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든 예외가 없으며 그 필사적인 태도는 처절해보이기까지 한다. 김예원 변호사는 이런 경쟁적인 사회에서 위로를 말한다. 

“예전에는 다들 힘들게 살아가며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이해하며, 챙겨줬어요. 그런데 오늘날엔 모두 각자 왕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누군가 나를 얕잡아 볼까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고, 힘든 내색을 할 수도 없어요. 사회가 정한 기준들로 세워지는 줄 안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는 거죠. 줄세우고 경쟁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서로 나란히 앉아 다독여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최근 그녀는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를 출간했다. 책은 영화 속에서 나타난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순간을 포착해 실제 사례와 함께 풀어낸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통해 여성 장애인의 이야기를, <주토피아>를 통해서는 장애인 작업장의 노동자들 이야기를, <맨발의 기봉이들>에서는 선의로 포장한 채 다가오는 나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오늘날 대놓고 분리하거나 차별하지는 못한다 해도 보이지 않는 구분은 수도 없이 많다. 책에 나오는 사례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접해본다면, 실생활에서 차별의 순간들을 인지하고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교육매거진 <앤써> http://www.answerz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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