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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무나 평범한, 그래서 와 닿는 엄마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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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소개
박원주 작가
<우리아이 인서울 대학 보내기> 저자

이따금, 대치동 학원가를 지날 때면, 

길가에 줄줄이 서있는 학원버스의 행렬을 발견하게 된다. 

노란 버스 사이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시계와 휴대폰을 번갈아 보는 

이들은  어김없이 자녀를 기다리는 학부모들이다. 

그 풍경을 볼 때면 늦게까지 건물 안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아이들에 대한 연민과 함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싶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자녀를 키워보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안일한 생각일 것이다. 

마음껏 뛰놀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자녀를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이는 다름 아닌 부모 아니겠는가. 

Written by 최소희  Photo by 김태환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고 약자에게 가차 없다. 그런 이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가만히 앉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게 부모의 입장이다. 누군가에겐 호들갑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저들의 행동은 기실, ‘내 자식이 잘 살았으면’, ‘고생하지 않았으면’하는 순수한 바람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돈 들여 학원에 보내고, 간식을 챙기고, 끝날 시간에 맞춰 픽업을 간다. 물심양면 모든 노력을 바치지만, 정작 아이는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아이를 위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라는 이름아래에선 한없이 작아지기만 하는 현실. 오늘 만난 박원주 작가 역시 대한민국 학부모로서 험난한 과정들을 모두 겪어낸 사람이다. 평범한 그녀의 이야기가 더없이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시시각각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아주 사소한 고민들에 대해 공감과 위로를 전하기 때문이 아닐까.


" 초보 엄마였던 당시의 저는 어리석게도 아이에게 더욱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의 강경한 태도는  아이와의 갈등만 커지게 했죠. 공감해주려고 노력하고 너그러운 태도로 아이를 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뒤늦게 얻었습니다. 그리고 사춘기의 끝은 아이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이 달라진 아이를 수용하고 적응하게 된다는 것도요.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 아이는 사춘기 때와 많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아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달라져야 하는 건 부모라는 사실을 후배 엄마들은 꼭 잊지 않았으면 해요."


엄마의 역할에 집중하다

그녀가 처음부터 아이에게 올인하는 부류의 엄마였던 것은 아니다. 포항제철중학교에서 교직을 시작해 서울을 떠나기 전까지 7여 년 간 근무했으며 이후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서울의 중고등학교에서 기간제 영어교사의 삶을 살아왔다. 낯선 타지에 올라와서까지 끝내 선생님의 자리를 놓지 않았던 것은 그녀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일에서 삶의 기쁨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학령기 아이를 두고 있는 부부에게 맞벌이란 그리 녹록하지 않은 일임을 깨닫게 된다. 

“마침 갑상선 기능저하로 인해 몸도 많이 힘들어졌어요. 일만 하기에도 벅찬데 아이까지 돌봐야 했으니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죠. 무엇보다 직장 생활을 하느라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매일 아침 7시에 아침밥을 차려놓고 아이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면서 집을 나갔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아프게 남아있어요. 학교에서 하는 행사에도 참여하지 못해 ‘우리 엄마만 못온다’며 아이가 속상해 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죠.” 

사실 그녀가 했던 고민은 다만 그녀만의 고민이 아니다. 이 땅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일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그 두 갈래의 길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던 간에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은 남기 마련. 

“아이를 위해 퇴직을 결심했지만, 제가 평생을 바쳐왔고 정말 좋아했던 일이었기에 아쉬움이 컸어요. 하지만 많은 것을 포기 하고 결심한 만큼, 제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다잡았어요. 아이가 외롭지 않게 잘 돌봐주고 학교 행사에도 꼬박꼬박 참여하며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맹모삼천지교, 교육을 위한 정성

학교를 그만둔 박 작가는 본격적으로 아이를 돌보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아무도 없는 빈집에 있는 일이 없도록 하교 시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집을 지켰고, 간식을 먹으며 오늘 하루의 재미있었던 일, 힘든 일을 나눴다. 그간 눌러온 엄마의 사랑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아이는 자랐고, 고학년이 되자 전문적인 학습에 대한 고민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아이의 학년이 높아지자 자연스럽게 학군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그 무렵 주변의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학습 환경을 위해 목동으로 이사 가는 것을 보게 되었고, 저도 그곳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되었죠. 학습열이 높은 목동으로 가면 그 분위기에 젖어 아이도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될 것 같고, 원하는 대학에도 척척 붙을 것만 같은 그런 생각이요.” 

고민 끝에 결국 그녀의 가족은 목동에 입성하게 된다. 목동의 엄청난 전세가에 대한 경제적 부담과 이사에 대한 번거로움까지 이겨내고 결심을 하게 했던 건 ‘도전해보고 싶다’는 어린 아들의 야무진 한마디였다고.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들어온 목동 입성에 성공했지만 그곳에서의 적응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목동에서 적응 하려면 아이가 반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도 중요했지만, 제가 같은 반 엄마들을 얼른 사귀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습니다. 2학기에 전학을 간 상황이라 이미 친한 그룹들이 형성되어 있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교실 대청소나 화단 가꾸기 등은 물론이고 각종 학부모 연수, 체육대회 등 참석할 수 있는 자리는 모두 참석하면서 학교 분위기도 익히고 서서히 우리 아이와 저를 그들에게 알릴 수 있었어요.”

이런 엄마의 노력에 보답하듯 아이는 큰 문제없이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해주었다. 들어가기 어렵기로 소문난 유명 학원의 레벨테스트에서도 척척 붙었고, 교육청의 영재 시험에도 욕심을 내 볼만큼 엄마의 기대는 커져갔다. 엄마와 아들, 이인삼각의 레이스에서 나름의 박자를 찾아가고 있으며, 현 상태를 유지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 쯤으로 여겨졌다. 


사춘기, 뒤늦은 깨달음 

‘사춘기’ 아직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겐 너무나 막연하고, 그래서 두려운 단어이다. 박 작가 또한 사춘기의 위험성에 대한 자자한 소문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고, 자신의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이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찾아온 아들의 사춘기는 그 모든 대비를 무색하게 할 만큼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 닿았으며 때때로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중 2때부터 시작된 우리 아들의 사춘기는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가슴이 답답해질 만큼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순하고 말도 잘 따랐던 아들이 갑자기 일탈행동을 일삼으며 다른 사람처럼 변해 버린 거예요. 그중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학원을 빠지고 PC방에 가는 일이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모임에서 자녀의 PC방 출입으로 한숨짓는 다른 엄마들을 보면서 우리아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수학학원에 간다고 나간 지 얼마 있지 않아 아이의 결석을 알리는 학원의 문자를 받게 됐어요. 온 동네를 뒤져봐도 아이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PC방에 들어가 보게 되었습니다. 불안한 예감은 꼭 들어맞는다더니, 어두침침한 PC방 한 구석에서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이후로도 엄마의 가슴을 후벼 파는 아들의 일탈행동은 계속됐다. 박 작가는 그때마다 실망하고 분노했다. 그 시절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쩔쩔매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자신과 아들 모두 안쓰러운 마음뿐이라고.   

“초보 엄마였던 당시의 저는 어리석게도 아이에게 더욱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의 강경한 태도는 아이와의 갈등만 커지게 했죠. 공감해주려고 노력하고 너그러운 태도로 아이를 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뒤늦게 얻었습니다. 그리고 사춘기의 끝은 아이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이 달라진 아이를 수용하고 적응하게 되는 것도요.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 아이는 사춘기 때와 많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아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달라져야 하는 건 부모라는 사실을 후배 엄마들은 꼭 잊지 않았으면 해요.” 


대학 입학, 눈물의 결실을 맺다

그렇게 변해버린 아들과 다투는 나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와 관계없이 아들의 고입은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흔들리는 아들에게 경쟁이 심한 목동에서의 고등학교 생활은 보나마나 불리할 것이 뻔했다. 이에 내신 받기가 수월하면서도 면학 분위기가 좋다고 정평이 나 있는 강북의 한 자사고를 선택하게 된다. 아들의 고등학교 생활 3년 동안 그녀가 가장 신경 쓴 것은 바로 학생부 관리였다. 당시 2019학년도 대입에서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직하게 공부만 하면 되는 정시와는 달리, 학생부종합전형은 3년 내내 학교생활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 한마디로 아이 혼자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박 작가는 학종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각종 대입 설명회 참석은 물론, 학교에서 진행하는 크고 작은 일정까지 꼼꼼히 체크해 코치했다. 

혹자는 ‘아이가 스스로 하게 해야지, 엄마가 매사를 챙겨야 하느냐’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박 작가 또한 이 문제로 인해 무수한 밤을 지새운 사람이다. 

“아이가 스스로 하는 것. 참 좋죠. 이건 저뿐만 아니라 모든 엄마들의 로망일 거예요.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만들고 거기에 맞춰 정보를 알아보고 계획성 있게 준비했다면 그 누구보다 기뻐했을 거예요. 설령 이런 자녀를 두었다고 해도, 요즘 같이 복잡한 입시 체계에서 아이가 제대로 된 전략을 짤 수 있을까요? 현실은 아이가 내신 공부에, 대회 참가에, 봉사활동, 동아리 활동, 진로 활동, 독서 활동까지 모두 소화해야 합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죠. 이런 상황에서 엄마가 아이 스스로 하기를 기대하며 손 놓고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요. 저처럼 딜레마에 빠진 엄마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자녀를 밀어주세요. 후회는 그러고 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요.” 

이후 고등학교 생활 3년의 눈물과 웃음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신과 모의고사를 비롯한 다양한 학교 활동으로 인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이었다. 

결국 그녀와 아들의 대입 분투기는 경희대학교 경영학과에 최종 합격하게 되면서 끝을 맺게 된다.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던 삼 년 간의 경험은 그녀에게 큰 재산이 되었다. 그녀는 현재 네이버 블로그 ‘평범 엄마의 우리 아이 대학 진학 비법과 알짜 교육 정보’를 운영하며 대학입시는 물론 아이 양육에 관한 글을 쓰며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후배 엄마들에게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 세상의 엄마들이 조금 더 행복해지는 그 날까지 그녀의 글쓰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후배 어머니들, 이제는 제가 경험을 나눠드릴 차례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고충은 다 비슷하잖아요. 저 역시 똑같은 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에 엄마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거든요. 제가 아는 범위에서 모든 걸 나눠드리고 싶어요.” 


" 저처럼 딜레마에 빠진 엄마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자녀를 밀어주세요. 

후회는 그러고 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요."


- 출처: 교육매거진 <앤써> http://www.answerz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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