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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먹는 광물’ 찾아 포항 광산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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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광물’찾아  포항 광산에 가다

“여기에 혀를 살짝 대보세요.”
평소 먹성 좋기로 소문난 기자였지만 선뜻 입을 열 수 없었다. 강일모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 포항지질자원실증연구센터 지질신소재연구실장이 건넨 건 그가 직전 땅에서 주운 돌이었다. 그래도 기자를 배려한 듯, 그는 돌을 쪼개 깨끗한 면을 들이밀었다.
“엣?”
용기를 내 혀를 대봤다. 그러나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냉동실 얼음에 갖다 댄 것처럼 혀가 암석에 쩍하고 붙어버렸기 때문이다. “제올라이트(불석)입니다. 포항과 경주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이죠. 포항에는 ‘떡돌’이라는 말이 있는데, 점토 함량이 높고 쉽게 부서지는 이 지역 돌의 특징을 표현하고자 붙인 이름이 아닐까요.” 강 실장은 웃으며 말했다.

포항 화산 지역에 묻힌 제올라이트 3000만 톤

8월 7일 오전 10시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 읍 삼정리 산 107.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기자는 지질신소재연구실 연구팀 의 광물 탐사에 동행했다. 망치와 탐사도구 등을 둘러 맨 10여 명의 연구원들은 광산까지 가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도 힘든 기색이 없었다. “비가 오지 않아 광산 가기 딱 좋은 날씨”라는 서성만 선임연구원의 말에선 달관이 느껴졌다. 연구원들은 산을 오르며 암석의 상태를 살폈다. 광산의 중 턱 쯤 올라갔을까. 강 실장이 한 곳을 가리켰다. 다가가 보니 마치 커다란 분필이 깨진 것과 같은 새하얀 제올라이트가 박 혀 있었다. “이곳은 동해가 열리면서 확장되던 시기인 약 2000만 년 전에 분출한 화산재가 쌓여 있는 곳입니다. 제올라이트는 이 화산재로부터 생성된 소중한 광물자원입니다.” 강 실장은 포항, 경주 지역은 신생대 제3기에 분출한 화산 암과 화산 쇄설물, 그리고 당시에 살았던 다양한 생물들의 화석이 산출되는 우리나라 제3기 시대의 표식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화산재는 주로 유리질(비정질)로 이뤄져 있고 입자크기가 작기 때문에 물과 반응해 유용한 광물을 만 들어낸다. 이날 본 제올라이트도 화산재와 물 이 땅속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왜 혀를 대보라고 한 걸까. 강 실장은 대답 대신 광 산 중턱에 있는 커다란 암석 벽을 가리켰다. 아까와는 다른 오묘한 하늘빛을 띠는 광물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지 만 그 역시 제올라이트다. “수분을 흡수한 상태입니다. 제올라이트는 이렇게 흡수력 이 뛰어나죠. 아까 혀가 붙는 느낌도 혀에 묻은 침을 흡수하 기 때문입니다.” 강 실장은 산화규소와 산화알루미늄으로 구성된 제올라 이트는 구조적으로 음전하를 띠고 있기 때문에 이를 보상하 기 위해 칼슘이나 나트륨 등과 같은 양이온이 구조 내에 함께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 양이온들은 주변 물 분자를 끌어당 겨 제올라이트 내부로 흡수되게 한다. 제올라이트는 3차원 적으로 연결된 그물망과 같은 골격으로 이뤄져 구조 내에 많은 구멍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멍은 흡수한 물 을 잘 담아 놓는 역할을 한다.

포항과 경주에는 제올라이트와 같이 화산재에서 기원했 지만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진 벤토나이트도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정확히 말하면 벤토나이트는 돌의 이름이고 주로 그 속 에 있는 ‘몬모릴로나이트’라는 광물이 유용하게 쓰인다. 이 광물은 운모처럼 층상구조를 이뤄 층과 층 사이에 나트륨, 칼 슘, 칼륨, 마그네슘 등 양이온이 들어 있다. 또 층상구조로 인 해 1g 당 비표면적이 800m²로 어마어마하게 넓다. 벤토나이트와 제올라이트는 다양한 산업에서 활용한다. 벤토나이트는 철강, 자동차, 토목 등의 분야에서 연간 10만 톤(t)가량 쓰이고, 제올라이트의 경우 농업용 상토, 세제, 석 유 크래킹(분해증류) 시 촉매로 사용된다. 제올라이트는 일 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방사성 물질 제거를 위 한 제염제로도 수출됐다. 강 실장은 “포항, 경주 일대에는 제올라이트와 벤토나이트 외에도 산성백토, 규조토와 같이 제3기 지질시대와 관련된 점토자원이 풍부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북 동해안 전체로 보면 제올라이트는 3000만t, 벤토나이트는 470만t, 산성백토 는 660만t, 규조토는 340만t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수고-거르고-말리는’ 원료 의약품 공장

“여기서부터는 방진복을 착용하고, 머리에는 방진모를 써야 합니다.” 노기민 선임연구원은 채굴한 광물이 의약품이나 화 장품 원료로도 쓰일 수 있다며 기자를 포항지질자원실증연 구센터 연구동 1층에 있는 공정처리실로 이끌었다. 식품의 약품안전처가 정한 우수원료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규정 (BGMP·Bulk Good Manufacturing Practice)에 맞춰 작년 말 구축한 따끈따끈한 시설이었다.
포항지질자원실증연구센터 지질신소재연구실 연구원들. 왼쪽에서 네 번째가 강일모 실장이다.
BGMP 시설은 흙먼지 날리는 광산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반도체 공장처럼 ‘클린룸’으로 이뤄져 있고, 온도는 23도로 유지됐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 서니 여러 개의 방이 보다. 채굴한 광물을 보관, 세척, 파쇄, 정제, 살균, 포장하는 장소를 모두 분리해놓은 것이었다. 게다가 장비는 모두 먼지가 잘 달라붙지 않는 스테인리스 강 재질이고 방마다 집진기가 설치돼 있었다. 노 선임연구원 은 “BGMP에 맞게 1세제곱피트(한 변이 30.48cm인 정육면체 부피) 공간에 먼지가 10만 개 이하로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그중 기자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습식분산실이었 다. 광물 분말을 물, 분산제 등과 혼합해 분리 및 정제를 준비 하는 방인데, 혼합한 용액이 젤리 또는 묵처럼 탱탱 했 다. 바로 몇 시간 전 광산에서 본 돌덩어리가 젤리처럼 변했다 가 다시 마이크로미터(μm·1μm는 100만 분의 1m) 크기의 분말로 바뀐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노 선임연구원은 “연간 1t가량의 시험용 원료 의약품을 생 산할 수 있다”며 “향후 기업과 연계해 BGMP 관련 인증을 받 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올해 말까지 연간 10~50t의 원료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150평 규모의 설비를, 2021년 하반기까지는 200t급 설비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덧붙다.

흡착성 뛰어난 점토광물, 먹고 바른다

광산의 돌이 원료 의약품이 되기까지
지질신소재연구실에서는 점토 원료 의약품뿐만 아니라, 피 부에 바르는 화장품부터 소화기관에 작용하는 의약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었다. 한 예로 흡수성과 흡착성이 뛰어난 벤토나이트를 이용해 미세먼지, 중금속 등을 제거하 기 위한 친환경 클렌징 제품을 개발 중이다. 또한 국내 점토를 활용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를 제균하는 치료제 등 신약 개 발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천연 광물은 이미 실생활에서 지사(설 사 완화)와 같은 약리적 효능이 있는 성 분으로, 또는 부형제(약리적 효능은 없지 만 제형이나 활성성분을 보조하기 위 해 첨가한 성분)로 활용되고 있다. 강 실장은 “우리나라의 광물자원 이 의약품에 더 많이 활용될 수 있 도록 천연 광물의 새로운 약리적 효능을 발굴하고, 광물과 약물을 결합한 신약을 개발 중”이라 고 말했다. 이때 광물을 의약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국제의약품 규제조화위원회(ICH) 가이드라인과 같은 엄격한 국제 품질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BGMP 시설에서 생산한 원료 의약품이 유해 중금속 기 준에 적합한지, 미생물 오염 등 안전에는 이상이 없는지 확인 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특히 2020년부터 ICH의 유해 중금 속 함량 기준이 1일 섭취량 기준으로 까다로워질 것이기 때 문에 세한 품질 관리 기술이 필요합니다.” 김재환 선임연구원의 설명을 들으며 원료 의약품의 품질을 분석하는 2층으로 이동했다. 대당 가격이 고급차를 능가하는 장비들이 즐 비했다. 그중 유도결합플라스 마 질량분석기(ICP-MS)가 눈에 들어왔다. 몇 해 전 부터 ICH와 미국약전 (USP)에서 의무화하기 시작한 유해 중금속 측정 장비다. 옆방에서는 생산한 원료 의약품 내 미생물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배지를 이용해 배양하는 실험이 한창이었다. 실험실 한 쪽에는 실제 사람의 위, 장 등 소화기관의 환경을 모사해 약물의 용출량을 알아보는 장비도 있었다. 강 실장은 “국내 점토 자원이라고 해서 품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며 “벤토나이트의 경우 흡착력이 더 우수하고 납, 비소 등 유해 중금속 제거도 훨씬 쉽다”고 말했 다. 실제로 국내에서 산출되는 벤토나이트는 층간에 칼슘 이 온을 가지고 있는 ‘칼슘형’으로, 나트륨 이온을 가진 해외 ‘나 트륨형’ 벤토나이트에 비해 흡착력이 높다. 원료 의약품으로 개발했을 때 나트륨 섭취도 줄일 수 있다. 그는 “벤토나이트의 경우 고품위 원광 가격은 톤 당 5만~7만원이지만, 의약품이나 화장품 원료로 제조 되면 톤 당 수백만~수천만원까지 부가가치가 높 아질 수 있다”며 “국내 점토 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 다”고 덧붙다.
  • 출처 l 동아사이언스 과학동아 (http://www.dongascience.com/)
  • 사진 |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 이영혜
  • 글 l 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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