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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추 vs. 마라 (한/중 매운맛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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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vs. 마라 韓中 매운맛 대결

마라 요리 중에서도 마라탕은 말 그대로 마라 맛이 나는 탕이다. 마라탕에는 고춧가루와 두반장(고추와 콩을 넣어 발효시킨 중국식 된장) 외에 팔각, 정향, 회향 등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간다.
그중에서도 마라의 핵심 향신료는 초피다. 초피나무(Zanthoxylum piperitum) 열매의 껍질을 빻은 가루인 초피가 마라 특유의 얼얼한 맛을 낸다. 초피는 중국어로 화자오라고 부르는데, 지금의 쓰촨 지역인 촉 지방의 후추라는 뜻의 ‘촉초’라는 이름이 있을 정도로 매운 쓰촨 요리에 빠지지 않는 상징적인 향신료다. 초피는 영어로도 ‘쓰촨 후추’라는 뜻의 ‘Sichuan pepper’로 표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추어탕의 비린내를 잡는 데 사용한다.

<산쇼올이 TrkC 수용체에 결합해 얼얼한 효과>


초피의 맛을 좌우하는 주성분은 산쇼올(sanshool)이다. 산쇼올은 초피의 일본명인 ‘산쇼(さんしょう)’에서 유래했는데, 이름 그대로 초피에 들어있는 알코올 성분을 뜻한다. 이 성분이 초피 특유의 저릿하고 얼얼한 맛을 결정한다.
반면 고추장, 고춧가루 등 우리에게 익숙한 매운맛은 주로 고추에서 온다. 고추의 매운맛을 좌우하는 성분은 캡사이신(capsaicin)이다. 캡사이신은 알칼로이드(자연적으로 존재하면서 질소 원자를 염기로 가지는 화합물)의 일종으로 불타는 듯한 화끈거리는 매운맛을 낸다.

산쇼올과 캡사이신은 둘 다 미각수용체가 아닌 감각신경계를 자극한다. 엄밀히 말해 미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통각인 셈이다. 다만 두 성분이 매운맛을 느끼게 만드는 과정에는 차이가 있다.

캡사이신은 주로 감각수용체 ‘TRPV1’에 작용한다. TRPV1은 우리 몸에서 열과 압력을 감지하는 수용체로 주로 수초가 없는 얇은 감각뉴런에 존재한다. TRPV1은 27도에서 활성화되는데, 이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따뜻함을, 이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차가움을 느낀다. 특히 43도가 넘어가면 뜨겁다고 인식한다.

그런데 캡사이신이 TRPV1에 결합하면 온도에 관계 없이 TRPV1이 활성화되고, 우리 몸은 뜨거움과 함께 통증을 느끼게 된다. 특히 뜨거움을 인지하는 감각수용체가 활성화되는 만큼 음식의 온도가 높을수록 더 맵게 느낀다.

산쇼올은 캡사이신처럼 TRPV1과 결합하기도 하지만 다른 수용체에도 달라붙을 수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샌프란시스코) 연구팀은 산쇼올이 TRPV1과 ‘TrkC’라는 두 종류의 감각수용체에 결합해 특유의 매운맛을 느끼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신경과학’ 2008년 6월 22일자에 발표했다. 

마라 요리의 익숙하면서도 화끈한 매운맛은 산쇼올이 캡사이신처럼 TRPV1과 결합한 결과다. 마라 요리의 얼얼한 매운맛은 산쇼올이 TrkC 수용체에 결합했을 때 나타난다. TrkC 수용체는 신경계의 시냅스 강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수초로 둘러싸인 두꺼운 감각뉴런의 말단에 존재한다.

산쇼올이 TrkC와 결합하면 감각뉴런에 있는 이공성 칼륨 채널(two-pore potassium channels)의 활성이 억제된다. 칼륨 채널은 칼륨 이온이 드나드는 통로로, 신경 세포의 칼륨 농도는 막전위를 형성해 신경 세포를 활성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산쇼올이 TrkC와 결합하면 칼륨 채널이 막히고, 이로 인해 입안 감각신경의 흥분 전달이 일시적으로 마비돼 얼얼한 느낌을 받게 된다.

실제로 산쇼올이 체내에서 작용하는 방식은 마취제의 작용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상준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칼륨 채널은 인체의 중추신경계에서 신경의 흥분과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제어한다”며 “정맥 마취제나 흡인성 마취제는 칼륨 채널 일부의 활성을 억제해 감각이 전달되지 못하게 만들어 마취 한다”고 설명했다.

<혀끝이 가장 먼저 인지, 입술에 가장 오래 남아>

마라탕을 먹었을 때 인체에서 가장 먼저 마라의 매운맛을 느끼는 부위는 어디일까. 또 어느 부위에 가장 오랫동안 얼얼함이 남게 될까.

중국국립표준화연구원(CNIS) 농업표준화연구소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케미컬 센시스’ 2017년 7월 5일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사람이 마라 성분인 산쇼올을 섭취하면 농도에 따라 그리고 구강 내 접촉 부위에 따라 강도를 다르게 느낀다. 

연구팀은 액체 크로마토그래피를 이용해 초피에서 산쇼올을 추출한 뒤 에탄올 용액에 저농도(용액 1mL당 0.075mg)로 녹인 용액과 중간 농도(용액 1mL당 0.165mg)로 녹인 용액을 각각 실험참가자에게 맛보게 했다. 그 결과 저농도 용액을 맛봤을 때는 혀끝에서 맛을 느끼기 시작해 입술에서 약간의 따끔거림을 느끼는 수준이었지만, 중간 농도로 맛봤을 때는 혀끝과 입술뿐만 아니라 혀 전체, 입술, 입천장, 뺨 점막 등 더 넓은 범위로 자극이 확산됐다.

구강에서 산쇼올에 의한 자극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부위는 혀끝과 혀 측면이었고, 자극이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는 부위는 입천장과 입술이었다. 마라탕을 먹으면 혀에서 먼저 매운맛을 느끼기 시작해 얼얼한 느낌이 입천장과 입술에 남아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어떤 재료와 함께 요리하는지도 매운맛의 강도에 영향을 미쳤다. 연구팀에 따르면 산쇼올을 소금이나 MSG(아미노산계 조미료) 등과 섭취했을 때는 맛을 느끼는 데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설탕과 함께 먹었을 때는 매운맛의 강도가 떨어졌다. 설탕을 많이 넣으면 매운맛이 덜 느껴지는 셈이다.


<매운맛 중독은 엔돌핀 분비 때문>

땀을 뻘뻘 흘리고 연신 물을 마셔대면서도 또 다시 매운 음식을 찾는 이유가 있다. 매운맛이 주는 중독 효과 때문이다.
산쇼올이나 캡사이신, 피페린, 진저롤 등이 내는 매운맛은 통각으로 분류된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등 미각은 혀 위에 있는 미뢰의 미각수용체를 통해 나타나지만, 매운맛은 통각을 인지하는 감각수용체가 인식한다. 매운맛은 맛이라기보다는 혀가 아프다고 보내는 신호인 셈이다.
그런데 인간의 뇌는 통증을 느끼면 이를 가라앉히기 위해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을 내보낸다. 이 호르몬이 모르핀 같은 마약성 진통제 역할을 한다. 마라토너들이 장시간 달릴 때 느끼는 쾌감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역시 엔돌핀이 만들어내는 효과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매운 음식을 먹으면 엔돌핀이 분비되면서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며 “다만 마라탕 등 매운 음식을 너무 자주 섭취하면 위염 등 위장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윤 교수는 “천식 등 만성 호흡기 질환이 있는 환자는 매운 향이 호흡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삼가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 출처: 동아사이언스 과학동아 (http://www.dongascience.com/)
  • 사진: GIB, Ragesoss(W), 일러스트: 동아사이언스, 신용수
  • 글: 신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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