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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일매일 여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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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소개
채근영
채근영 <고마워 자존감> 저자

사람은 저마다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별명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기자의 어린 시절 별명은 전화기였다. 

성이 ‘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은 제멋대로 그렇게 불렀다. 

채근영 작가에게는 책벌레, 여자 훈장, 할매 등 남들이 부르는 여러 별명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스스로 ‘채여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을 정말 여왕님답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여왕님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만나지 않겠다고 

주변에 발표까지 했으니 이제 ‘채여왕’은 그녀의 공식 별명이 된 셈이다.

Written by 전민서  Photo by 이수연


인터뷰가 있던 날은 오랜만의 봄비가 시원하게 내렸다. 포근한 날씨가 반가우면서도 비가 오는 탓에 지하철에서 더 진을 빼야 했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이미 활기찬 웃음소리가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매 순간 웃음으로 가득했던 인터뷰를 마치고 스튜디오를 나서는 그녀는 비가 와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예전과 달리 엉뚱한 것에도 감사하며 살고 있다면서. 심지어는 지나가는 차가 물을 튀겨도 말이다. 그러다 보면 자주 웃게 되고, 정말로 감사하게 된다고. 역시 ‘불쾌함’과 ‘유쾌함’은 한 끗 차이일까. 


진흙 속의 진주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인생을 보면 참 부럽잖아요. ‘저런 인생도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을까’ 생각도 많이 했었지만 여러 계기를 통해 내 인생의 주인은 나고, 인생의 여왕은 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저를 ‘채여왕’이라고 부르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어요?”

채근영 작가는 현재 해운대 연세 주니어센터에서 언어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동시에 자존감, 성격기질별 대화법, 하부르타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어머니의 자살, 아버지의 파산, 장애우 동생 등 살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상담을 하면서 저보다 큰 우여곡절을 겪고 이겨내신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오히려 제 사연이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제 이야기들이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는데 도움이 되는 걸 발견했어요.”

채근영 작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주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책 속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책을 읽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던 중 그녀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때 저와 상황이 비슷한 친구들을 만났는데, 친구들의 사연이 저보다 더 심한 거예요. 아버지의 가정 폭력에 시달린다든가, 돈을 벌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각자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너무 밝고 명랑했어요. 그 비결이 뭘까 생각해보니까 바로 ‘자존감’이었어요. 외모고, 돈이고 다 필요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매력이라는 걸 느꼈어요. 저도 이 사연에 몰입하지 말고, 배울 건 배우고 밝은 면을 찾아서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녀가 만난 친구 중에는 좋은 집안의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오히려 자존감이 낮고, 자기비하가 심했다. 흙구덩이 속에서도 사람이 빛나는 이유는 역시 자존감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생각했다. ‘자존감 하나 잘 키워놓으면 사람이 참 행복할 수 있겠구나,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웃으면서 살 수 있겠구나.’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자존감을 재산으로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우선은 육체적 폭력이 아니더라도 언어폭력 등 가정폭력에 노출이 돼서 부모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당한 경우에는 자존감이 낮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부모가 경제적 지원은 해줄 만큼 해줬는데도 자존감이 낮은 경우는 너무 비교를 많이 해서 그래요. 사촌, 형제, 자매와 비교하며 질책하면 그게 아이 마음 안에 쌓이는 거죠. 세 번째 경우는 부모가 사랑 표현을 많이 했지만, 아이가 스스로 겪어내야 할 일들을 부모가 대신해줬을 때죠. 매번 부모가 장애물을 대신 치워주면 아이는 ‘아, 나는 부모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부모만 바라보게 돼요. 아무래도 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꼭 부모가 아니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 등 주 양육자에게 정서적 지지를 받은 아이들이 훨씬 자존감이 높더라고요.”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좋은 책과 사람들을 만나며 점점 자존감을 회복해나갔던 채근영 작가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때의 일은 지금의 그녀를 있게 만들었고, 더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 

“원래 스무 살까지만 살고 깔끔하게 죽자고 생각했었어요. 어차피 허무한 인생이고, 결국 죽을 텐데 뭐 때문에 이렇게 애걸복걸 사나 싶었거든요. 그래서 몰래 죽으려고 지리산에 들어갔어요. 길을 잃고 나서 처음에는 ‘이대로 죽어도 괜찮겠다’ 생각했는데, 체온이 떨어지면서 죽을 때가 되니까 지난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더라고요. 좋았던 것, 싫었던 것, 그리고 끝에 우리 가족들이 슥 스쳐지나가는 거예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길을 헤매다가 기적적으로 산장에서 발전기 소리가 들려서 살아났죠. 어쩌면 죽었을 수도 있는데 다시 얻은 생명이니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 생각했어요. 그 이후로도 부정적인 생각을 할 만한 상황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산 속으로 돌아가요. ‘겨우 이거 가지고 힘들어할 필요 있어? 재밌게 살아가면 되지.’ 지금은 하루하루가 엄청 재미있고 감사해요. 눈 뜨면 오늘도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주인공의 기분을 함께 느끼며 공감하고, 나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주는. 그녀는 스스로 약속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울고 웃으며 매일을 살고 있다.   

“상담을 하다보면 속 이야기를 못해서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아요. 부탁이나 거절을 잘 표현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치 보느라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직장에서 뿐만 아니라 가족관계에서나 연인관계에서도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이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 나를 약한 사람으로 보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기 바빠요. 내가 당신 때문에 화가 난다, 서운하다, 외롭다 등 표현해야 하는데 못하니까 더 미워지고 서운해지는 거예요. 작은 상황 상황마다 혼자 삭이다가 정말 결정적으로 얘기해야 할 때 안돼서 회사를 뛰쳐나온다든가 이혼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채근영 작가가 추천하는 방법은 느낌으로 나를 표현하는 ‘나 전달법’이다. ‘당신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나는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를 위해서 이 부분을 양해해주면 안 되겠습니까’와 같이 하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감정을 느끼는 순간에 그때그때 얘기해야 한다는 것.  

“주변에 서운하게 했던 사람들에게 ‘사실 나 그때 서운했어. 이렇게 해주면 좋겠어’라고 작은 것부터 얘기하면 대부분 놀라요. 진작 얘기를 했으면 조율을 했을 텐데 왜 말을 안했냐고요. 처음에는 다들 어려워해서 제가 상대 역할을 하면서 연습시켜주기도 하는데, 어떤 분은 6년 동안을 같이 연습했어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서 살다 보니 직장 상사에게 미운털이 박힐까봐 빨리 퇴근하겠다는 말을 못하는 분이었어요. 결국 상사에게 말하니까 ‘여태까지 야근 많이 하느라 힘들었지. 이제 좀 쉬면서 해’라고 했대요. 그동안 표현하지 않아서 얻어내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닫고, 이제는 과한 요구도 하면서 속 시원하게 지내고 계세요(웃음).”


뿌리부터 바로 세우기


지난 10년간 수많은 사람을 만났을 그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는지 물었다.

“영어 강사로 대학교에서 특강도 하고, 통역도 하는 분이 찾아왔었어요. 겉으로 보면 능력 있고, 카리스마도 있고 대단한데 알고 보니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늘 어머니를 때리고, 딸에게는 ‘너 같은 게 뭘 할 수 있겠냐’며 언어폭력을 일삼은 거예요. 그래서 불안감이 항상 있어서 누군가 화난 말투를 하거나 굳은 얼굴을 보이면 흠칫하면서 눈치를 본대요. 외국에 나가서 큰 행사도 진행하는 분인데, 작은 일에 실수하면 오히려 자책하면서 힘들어하고요. 더 크게 될 수 있는 사람인데, 아버지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니니까 일적으로도 능력발휘를 크게 못하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결국 아버지와의 고리를 끊는 연습을 했죠. ‘좋게 이야기하실 때만 만나겠다’고 분명히 얘기하고 전화를 끊는 연습을 1년 정도 했어요. 아버지가 처음에는 난리가 났는데, 계속 단호하게 하니까 선물을 들고 찾아왔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한 번에 변할 수가 없잖아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까 어느 순간 그 분이 ‘나는 귀중한 딸인데, 우리 아버지가 부모로서 그걸 못 배운 사람이라서 모르는구나. 나라도 스스로 귀중한 딸로서 입지를 이제라도 만들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어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조금씩 자신을 사랑하게 된 내담자는 ‘나를 사랑한다는 게 이런 마음인지 40년 동안 몰랐다. 내가 잘하든 못하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마음의 평화가 이런 거구나’를 알게 됐다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를 받으며 학대당했던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도 담겨있으리라.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된 걸 보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당해보지 못한 아픔이기에 왜 벗어나지 못하냐고 할 수 없겠지만, 스스로 노력을 해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걸 한 번에 찾는 사람은 없어요. 오르락내리락 하겠지만, 괜찮다고 또 다독여주고 연습하면 되는 거예요. 어느 수준에 오르기까지는 곁에서 누군가 도와주고, 코칭 해주는 게 중요한데, 그 이상이 되면 스스로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자존감이 높아지면 얼굴에서 정말 빛이나요. 그게 정말 예쁘더라고요. 자신만의 매력을 찾은 거죠. 제 주변에는 저보다 자존감 여왕인 분들이 많아요.”


"지금은 하루하루가 엄청 재미있고 감사해요. 

눈 뜨면 오늘도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아름답게 빛나는 다이아몬드처럼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다른 데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 그러다 보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방법은 하나다. 다른 데 관심을 쏟아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

“그림자는 항상 사람을 따라다니잖아요. 그림자만 보고 있으면 암울하거든요. 근데 시선을 돌려서 햇빛도 보고, 새소리도 듣고, 꽃도 보다 보면 ‘삶이 이렇게도 살아지네. 밝은 면도 있네’ 하고 깨닫게 돼요. 자꾸 시선을 돌려서 감사할 거리, 긍정할 거리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회피하라는 게 아니라 다른 면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거죠. 그림자는 커질 때도 있고, 작아질 때도 있거든요.”

주변의 역경 속에서도 자존감을 찾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채근영 작가는 여러 번 강조해도 모자라다며 좋은 책과 좋은 사람들, 각자의 종교를 꼽았다. 되도록 젊을 때 찾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책을 읽다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이겨낸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자기 상황에만 몰두해서 비관할 게 아니라 여러 사연과 사정을 보면서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돼요. 그리고 주변에 분명히 좋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본인이 손을 잡지 않으면 도와줄 수 없거든요. 잘 찾아보고 있다가 좋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잘 요청하라고 하고 싶어요. 가서 도와달라고 문을 두드리면 도와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가서 문을 두드리고,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가면 분명히 좋은 사람이 있어요. 그들과 여러분의 상처와 고민을 나누세요.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내가 힘든 걸 모르고, 나라는 사람의 매력도 모를 테니까요.” 


- 출처: 교육매거진 <앤써> http://www.answerz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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