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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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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소개
윤주옥 교수
<10대, 나의 발견> 저자

흔히 소망이나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한다. 

하루 3시간, 일주일 20시간, 10년을 투자하면 한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분야에 대해 하루에 3시간을 꼬박 투자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윤주옥 교수는 말한다. “하루에 30분 정도 순수하게 하고 싶은 것에 온전히 에너지를 써보세요.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일주일에 반나절 정도도 좋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자기가 인정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학생들이 학교공부, 시험공부만 할 게 아니라 인생과 자신에 관한 공부 같은 넓은 의미의 공부를 했으면 좋겠어요.”   

Written by 전민서  Photo by 이수연



여전히 방황하는 이들


지난 2012년부터 5년간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에서는 ‘청소년 정체성 찾기’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국책사업단으로서 연구한 내용을 사회에 환원하는 프로젝트로, 10대 학생들이 숨 쉴 기회를 만들어주자는 것이 목표였다. 당시 주축이 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윤주옥 교수는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기에 특히 10대를 위한 인문학 교육에 관심이 많은 터였다. 

“일 년에 두 번 주로 수도권에 있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했어요. 그때가 사람들이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막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때였거든요. 그런데 어른들을 위한 인문학 책은 많은데 10대를 위한 인문학 책은 없었어요. 강의를 기획하고, 주제를 잡고 선생님들을 섭외하기까지 준비 과정도 길었지만 결과적으로 반응은 좋았어요. 서울 시내 중·고등학교에만 공문을 발송했는데 충청도, 제주도에서 찾아온 학생들도 있더라고요. 어려워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심리학, 철학, 언어학 등 전문가들이 모여서 진행했기 때문에 깊이 있는 강의가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러한 내용을 더 많은 학생들과 나누고자 <10대, 나의 발견>이라는 책도 발간하게 되었죠.”  

현재 그녀는 서강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제 막 청소년기를 벗어난 대학생들의 경우는 어떨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서강대 학생들은 전반적으로 자존감이 높은 편이에요. 그런데 다만 입시에 시달린 흔적들이 보여요. 내색은 잘 안 하는데, 개인적으로 면담을 해보면 많이 지쳐있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영어 유치원부터 시작해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쉼 없이 과정을 밟아온 학생들이 많거든요. ‘목표를 상실해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학생들에게 그때는 조금 쉬라고 해요.”

우리나라 학생들은 사실 지금껏 대학교 진학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막상 대학교에 가서는 에너지를 다 써버려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게 버거워지는 것이다. 가까이서 학생들을 지켜보는 윤 교수는 기말시험에서 점수를 잘 못 받을까 봐 아예 시험을 보지 못하는 학생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성적으로는 상당히 우수한 학생들인데, 진지하게 영문학을 하고 싶어서 왔다고 하는 학생들은 많지 않아요. 인문학 쪽에서 영문학과 정도면 대학원을 가든 직장을 가든 무난하겠다 싶어서 무작정 온 거죠. 사실 자기 목표나 자기가 원하는 걸 생각할 기회가 없었던 거예요. ‘원래 인생이란 그런 거지’ 하면서 묻어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느 순간 그 사실이 자기를 심하게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요. 그때부터 치열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하는데, 사실 이런 고민은 중·고등학교 때 이미 시작했어야 하는 고민인 거죠.” 


이제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


현재 중학교에서는 학생참여형 수업을 통해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키우는 ‘자유학기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 시기를 어떻게 채워나가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앞으로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고 노력해보는 시도 자체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교육부에서 제도적으로 기간을 주는 건 좋아요. 그런데 실제로 학생들을 이끌어내는 선생님이나 아이들은 여유가 없거든요. 먼저 부모가 자녀에게 여유를 줘야죠. 요즘 4차 산업혁명을 계속 얘기하는데, 부모들은 2차 혁명 시대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제는 정말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시간과 공을 들여서 찾아야 하죠. 때로는 인생에서 우왕좌왕하는 게 필요하지만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건 힘들잖아요. 각자의 길을 갈 기회를 부모가, 학교가, 사회가 제공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죽으면 누구든 신적 존재 앞에 가서 ‘너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대요. 그때는 ‘이름은 윤주옥입니다.

직업이 무엇입니다’가 아니라 정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송곳으로 머리를 찔리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아직 누구라고 말할 준비가  안 되었거든요. 아이 키우고,  학생들 가르치고, 논문 쓰느라 순간순간 바빴지만 

그걸 관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는 연습은 부족했던 것 같아요."


윤주옥 교수는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인 딸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진다. “그게 네가 진짜 원하는 거니?” 어릴 때부터 엄마가 영문학 책을 보고, 공부하는 걸 봐온 딸은 자연스레 자신도 영문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온 것.     

“최근 2~3년 전부터는 제가 자꾸 물어요. ‘엄마가 뭐 하는 거 같니? 너 정말 영문학 공부하기를 원하니?’ 자꾸 질문하니까 생각을 좀 해보더니 요즘에는 불안하대요. 정말 엄마처럼 영문학이 좋아서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요. 이제 시작인 거죠. 이 단계가 지나야 딸이 진짜 원하는 게 보일 거예요. 저처럼 정통 영문학을 할 수도 있지만, 저와는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이니까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는 거죠. ‘What do I want?’ 내가 뭘 원하는지 물으면 바로 대답이 나오나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제가 한 남고에 가서 강의했을 때 학생들한테 ‘너 인생에서 뭘 원하는지 아니?’ 물으니까 대부분 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들어보면 대부분 직업이에요. 직업 말고 정말 원하는 주제나 일에 관해 물으면 그때부터 아이들이 당황하기 시작해요.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아이가 건축이 뭔지, 왜 하고 싶은지는 대답을 못 하거든요. 이렇게 허물이 벗겨져 나오는 것부터 시작해야죠.”


"때로는 인생에서 우왕좌왕하는 게 필요하지만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건 힘들잖아요. 각자의 길을 갈 기회를 부모가, 학교가, 사회가 제공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윤주옥 교수가 추천하는 ‘나’를 발견하는 방법은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걱정하기에 앞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보라는 것. 하나의 길을 선택했을 때 결과가 좋지 않은 게 막다른 길이 아니라, 그때마다 옆으로 가는 길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불안해하지 말라고도 말했다. 

“요즘 아이들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서 온갖 시나리오를 다 짜면서도 직접 해보지는 않아요. 차 한 잔을 마시더라도 말로만 들어본 사람이랑 직접 경험해보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전혀 다르거든요. 해보는 것에 조금 더 용기를 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학업적인 부분에 너무 에너지를 쏟으니까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를뿐더러 알아도 해볼 여력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안 할 시간이 필요해요. 저희 딸은 평소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민감한 아이인데, 제가 하루에 30분 정도는 너를 위해 쓰라고 했어요. 한동안은 학교에 갔다 와서 피아노를 쳤는데 30분 동안이면 숙제와 공부를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래서 하루에 30분 너를 위해 쓴다고 세상이 거꾸로 가지 않는다고 말해줬죠.” 



끊임없이 ‘나’를 발견하기


청소년기에 아무리 많은 고민을 하더라도 대학에 가고, 직장에 가면 또 새로운 고민이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고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잃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발견해나갈 수 있을까. 

“저는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했는데, 학교가 시골이라 다른 데는 갈 곳이 없어서 요리하는 데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항상 공부 아니면 요리를 하다 보니 재주도 늘고 관심도 생기더라고요. ‘한국에 돌아가지 말고 식당을 할까?’ 생각이 들 정도로요.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지금도 꾸준히 음식에 관심이 많아요. 저는 항상 저 자신한테 솔직해지려고 많이 노력해요. 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잖아요. 저는 항상 선생으로서, 엄마로서 의무를 먼저 택하고 하고 싶은 건 자투리 시간에 했었는데 요즘은 그 균형을 많이 맞추려고 해요. 15년 정도를 그렇게 살아보니 그게 나한테 유익하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건강이 안 좋아진다든지, 가족들에게 소홀해진다든지 결과적으로 저한테 영향이 오는 거죠. 엄청 열심히는 사는데 방전되는 느낌을 겪으면서 이제는 바꾸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명확한 목표가 있더라도 앞만 보고 달려가면 누구든 지치기 쉽다. 꾸준히 해오던 일에 회의감을 느끼거나, 전혀 새로운 일에 관심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 아닐까. 윤주옥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스스로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자신에게 질문한다. “Who am I, What I am.”

“죽으면 누구든 신적 존재 앞에 가서 ‘너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대요. 그때는 ‘이름은 윤주옥입니다. 직업이 무엇입니다’가 아니라 정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송곳으로 머리를 찔리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아직 누구라고 말할 준비가 안 되었거든요. 아이 키우고, 학생들 가르치고, 논문 쓰느라 순간순간 바빴지만 그걸 관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는 연습은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녀는 매일 자신이 누구인지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일도 생겼다. 

“제가 주로 쓰는 글은 비평이거든요. 대부분 누군가의 작품을 보고 평가하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창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글의 균형도 맞춰보고 싶어졌거든요. 중학교 때까지는 시를 썼었는데, 입시 공부하면서 접었어요. 그때 시는 아무나 쓸 수 없다는 걸 깨달아서 앞으로 시를 쓰고 싶은 건 아니고요(웃음). 요즘 시간 날 때마다 내 글을 쓰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윤 교수의 책 또한 10대들에게 자기를 발견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책이듯, 얼마 전부터는 서점에 ‘나’에 관한 책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제야 사람들이 자신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좋은 징조가 아닐까. 그동안 자신에 대해 모르고 살아온 사람도, 또 다른 벽에 부딪힌 사람도 이제 더는 나와의 대화를 미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출처: 교육매거진 <앤써> http://www.answerz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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