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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대 간편식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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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족을 부탁해 3대 간편식 분석

자취 10년 차 '혼밥족(族)'은 TV가 두려웠다. TV 화면에는 맛집을 찾아가 엄지를 척 세워 대는 '먹방', 화려하게 소금을 뿌려대는 셰프의 '쿡방'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반숙 달걀 프라이를 얹은 즉석밥에 간장과 참기름을 넣어 후다닥 비벼서 허기를 달래던 혼밥족은 눈물과 함께 간장계란밥을 삼켰다. 하지만 이제 설움의 시대는 갔다. 유명 셰프의 요리를 마트나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엄마 밥 생각이 안 날 만큼 정갈한 밥상이 10분 안에 차려진다. '가정간편식(HMR·Home Meal Replacement)'이 첨단 포장 기술을 등에 업고 우리 식탁에 '강림'했다.
적당한 크기로 토막 낸 갈비를 삶아 달콤짭짤한 간장 양념에 각종 야채를 넣고 1시간 이상 푹 끓여내야 갈비찜이 완성된다. 갈비를 제외한 야채 등 각종 재료만 8가지, 여기에 10종 이상 양념을 섞어야 갈비찜용 특제 양념장이 완성된다. 바깥에서 먹기에도 가격이 만만치 않다. 소(小)자 기준 평균 2만5000원. 하지만 식탁에 혁명이 일어났다. 단돈 5000원, 2분 30초 만에 맛있는 갈비찜을 집에서 맛볼 수 있다.

가정간편식_ ‘혼밥족’의 친구

기존 간편식은 말 그대로 한끼 식사를 간단하게 때우기 위해 선택한 인스턴트 식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즉석 카레, 참치 통조림, 즉석밥 등 메뉴 선택의 폭도 좁았다. 변화의 시작은 2010년. 한국 식품에 적합한 포장기술이 개발되면서부터 였다.
1인 가구의 증가, 맞춤형 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 등이 포장기술의 발전을 견인했다.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2011년 1조1067억 원이던 시장 규모는 5년 만에 51.1% 오른 1조 6720억 원으로 증가했다.
국내 가정간편식 제조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포장 방식은 레토르트 포장(35.2%), 진공 포장(32.1%), 냉동식품 포장(16.4%)이 대부분이다. 기법은 조금씩 달라도 목적은 동일하다. 식품 속 미생물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 즉 멸균을 통해 유통기한을 늘리는 것이다.
이윤호 아워홈 식품연구원은 “기존 기술은 장기적인 유통 기한 확보에는 도움이 되지만 조리된 식품의 맛을 변화시켜 간편식을 저평가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며 “최근에는 신선도와 영양, 맛을 모두 살리면서 유통기한까지 확보하는 것을 기술 개발의 핵심으로 꼽는다”고 말했다.

식품은 열처리, 포장방법, 저장 환경 등 외부 요인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식품마다 포장기법이 달라야 하는 이유다.
가령 콩나물은 운반 과정에서 오랫동안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미세한 구멍이 뚫린 포장재를 사용한다. 이 포장재는 ‘환경조절 포장(MAP)’으로 불리는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내부의 산소 소비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의 균형을 구멍으로 조절해 곰팡이와 박테리아의 성장 속도를 늦춘다.
무균 포장도 열을 가하지 않고 미생물을 죽여 식품 고유의 맛을 유지하기에 유리한 방식이다. 인체에는 무해하지만 미생물을 죽이는 세정제를 쓰거나 초고온 상태에서 살균해 식품을 미리 무균 상태로 만든 뒤 무균 공장에서 무균 포장재 안에 포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무균은 미생물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유통 기한까지 미생물에 의해 부패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수준이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도 활발하다. 가정간편식은 주로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는 만큼 전자레인지를 이용한 조리의 편의성을 높이는 신기술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전자레인지는 식품 내 수분을 이용해 가열하는 방식이 어서 음식이 딱딱해지는 단점이 있다.
이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기존처럼 포장재의 일부를 뜯지 않고 조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자동증기배출 포장’은 특정 온도와 압력에서 내부의 증기를 포장지 밖으로 배출시킨다.
반대로 찜기처럼 오히려 용기 안에 증기가 발생하도록 해 식품을 쪄낸 것 같은 효과를 주는 기술도 있다. 식품의 특성에 따라 맞춤형 옷을 입게 된 것이다.

군대식_ 줄 당기면 바로 발열

간편식은 열악한 환경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간편식의 편의성이 가장 부각되는 장소는 군대다. 전투식량은 휴대성은 물론, 군인의 활동에 필요한 열량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긴박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준비만 갖춰도 섭취할 수 있어야 한다. 전투식량은 전자레인지도, 뜨거운 물도 없는 야외 환경에서 조리된다.
최초의 전투식량은 1800년대 나폴레옹 시대에 나왔다. 전투를 위해 통에 음식을 담은 것이 시초로, 이후 과학자들이 주석(Sn)으로 통을 개량하며 금속통조림의 개발을 이끌었다.
전투식량도 과거에는 레토르트 식품이 주를 이뤘다. 이는 I형전투식량으로 불리는 유형으로, 끓는 물에 레토르트 파우치에 담긴 음식을 데워 먹는 식이다. 하지만 전시 같은 급박한 환경에서 조리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부각돼 II형 전투식량이 개발됐다. II형 전투식량은 동결건조식으로 끓는 물 대신 찬물을 부어도 불려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먹을 만한 쌀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40분 이상으로 비효율적이다. 이런 단점을 개선하며 개발된 것이 즉각 취식형 전투식량이다. I형 전투식량에 발열팩이 부착된 형태로 보면 된다.
전투식량에 달린 줄을 잡아 당기면 급속도로 발열이 시작돼 100도에 가까운 온도로 내부 식품을 데운다. 물이 살짝 끓을 정도의 열이 30분 간 지속돼 갓 지은 밥 같은 고슬고슬한 밥을 먹을 수 있다.
전투식량 생산업체인 참맛 관계자는 “철과 마그네슘으로 구성된 발열체가 소금물과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열이 발생하는 원리를 적용했다”며 “줄을 잡아 당길 때 발열용액 봉지가 찢어지며 물이 새어 나오고, 이때 발열 반응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우주식_ 간편식의 ‘원조’

제한된 공간, 급변하는 온도, 무중력, 높은 방사선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우주인에게도 간편식은 필수다. 사실 우주식은 간편식의 ‘원조’나 마찬가지다. 우주식은 1961년 옛 소련의 우주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지구 궤도 비행에 성공한 이후 연구가 시작됐다. 레토르트 포장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진행한 우주식 연구의 산물이다.
우주식은 밀폐가 필수다. 국물이나 가루가 진공 상태의 우주선을 떠돌아 다니다 기계 고장이나 오류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식의 유통기한은 최소 9개월에서 최대 3년이다. 또 지구의 세균이 우주 공간에서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기 때문에 완벽한 멸균이 필수다. 수분도 완전히 제거한다. 식량을 오래 보존하는 것은 물론, 발사 중량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포장재의 안정성과 살균력이 특징인 레트로트 식품이 개발된 이유다.
하지만 맛을 변화시킨다는 레토르트의 한계 때문에 우주식의 포장 기술도 발전을 거듭했다. 송범석 한국원자력연구원첨단방사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가령 레토르트 포장으로 우주 김치를 만든다면 고온 처리 과정 때문에 볶음 김치의 맛이 난다”며 “방사선 조사 기법 등이 이를 대체할 포장기술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방사선 조사 멸균법은 투과력이 높은 감마선을 식품에 쏘아 식품 고유의 품질 변화는 막으면서 동시에 미생물은 제거하는 기술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이 기술로 2008~2013년 김치, 라면, 수정과, 호박죽, 닭갈비 등 한식 24종을 우주식품으로 개발하고 우주선에 선적할 수 있다는 인증을 획득했다. 이소연 박사는 2008년 4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가면서 우주식으로 개발된 김치를 가지고 갔다.
중국은 2003년 중국 최초의 우주인 양리웨이를 위해 처음 우주식을 개발했고, 현재 60종 이상 개발했다. 당시 양리웨이는 ISS에서 닭고기와 땅콩, 고추 등을 매콤하게 볶은 쿵파오치킨과 허브차를 먹었다.
이탈리아의 유명 커피회사인 라바차(Lavazza)는 ISS에서 에스프레소를 맛볼 수 있도록 우주 커피 ‘이스프레소(ISSpresso)’를 개발해 ISS로 올려 보냈고, 2015년 이탈리아 우주인 사만다 크리스토포레티가 첫 시음의 영예를 얻었다. 러시아 우주식은 300종이 넘는다

  • 출처 l 동아사이언스 과학동아 (http://www.dongascience.com/)
  • 글 l 권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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